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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귀화 “이번엔 웃겨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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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귀화 “이번엔 웃겨 드릴게요”

입력
2019.07.08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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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방도령’ 10일 개봉 

 괴짜 도인으로 파격 변신 

배우 최귀화는 영화 ‘기방도령’에서 정체불명의 도사 육갑을 맡아 홀딱 벗은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판씨네마 제공
배우 최귀화는 영화 ‘기방도령’에서 정체불명의 도사 육갑을 맡아 홀딱 벗은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판씨네마 제공

“도를 아십니까?” 산길에서 마주친 웬 사내가 말을 걸어 온다. 도인인가 싶어 돌아보니 행색이 걸인이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때 낀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칼 주변엔 ‘웽~’ 하고 날파리가 날아다니고, 얼굴 아래로는 홀딱 벗은 나체다. 엽기적인 첫 등장에 괴성과 폭소가 함께 터진다. 야성적인 영화 캐릭터 ‘아쿠아맨’과 명화 ‘비너스의 탄생’을 참고한 캐릭터라는 설명에서도 ‘B급’ 냄새가 솔솔 풍긴다.

“B급 코미디를 보는 건 좋아하지만, 제가 그런 연기를 하는 건 좀… 푸하하.”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최귀화(41)는 스크린에서 마주한 자신의 코믹한 모습이 머쓱한지 괜스레 ‘자학 개그’로 운을 뗐다. 선 굵은 연기로 정평이 난 그는 영화 ‘기방도령’(10일 개봉)에서 기존 이미지를 내던지는 파격을 감행했다. 말장난과 슬랩스틱을 능청스럽게 오가는 코미디 연기가 발군이다.

‘기방도령’은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기방에서 자란 허색(이준호)이 폐업 위기에 놓인 기방을 살리기 위해 남자 기생이 되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최귀화는 허색과 ‘기방결의’를 맺은 괴짜 도인 육갑 역을 맡았다. 그는 “조선시대 열녀들이 유흥으로 외로움을 달랜다는 발상이 ‘신박’했다”며 “여성 캐릭터를 주체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육갑은 엽기적인 외모로도 웃음을 자아낸다. 판씨네마 제공
육갑은 엽기적인 외모로도 웃음을 자아낸다. 판씨네마 제공

육갑은 도사인지 한량인지 사기꾼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고려 왕족 출신임을 내세울 때는 허풍쟁이 같은데, 뼈 있는 명대사를 읊을 때는 현자가 따로 없다. “육갑이 시답잖은 농담으로 웃음을 주는 역할인데, 단지 감초라기엔 분량이 너무 많았어요. 그러면 관객이 육갑에 빨리 지칠 수 있죠. 육갑의 전사(前史)를 제시하고 싶어서 고려 왕족이라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행색은 거렁뱅이인데 신분은 높은 육갑,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신분은 천한 예인인 허색, 이 두 사람의 아이러니가 빚어내는 역설을 활용해 보자 싶었죠.”

최귀화가 펼치는 애드리브의 향연이 맛깔스럽다. 육갑이 “육십간지에 통달해서 육갑”이라며 이름 뜻을 장황하게 랩 배틀처럼 소개하는 장면도 그의 아이디어다. 그는 “경험을 토대로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서 ‘내가 육갑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편하게 접근했다”며 “평상시 내가 까불거리는 모습도 많이 담겼다”고 귀띔했다.

스릴러, 범죄물, 액션, 드라마, 이제는 코미디까지, 폭 넓은 소화력을 지닌 그에게 최근 몇 년간 출연 제안이 쏟아졌다. 극장가에선 ‘최귀화 영화’가 끝나면 또 다른 ‘최귀화 영화’가 나온다는 얘기도 들린다. 올해 상반기에만 ‘말모이’부터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기방도령’ 등 3편이 개봉했고, 다음달엔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린 ‘광대들’을 선보인다. 요즘 촬영 중인 OCN 새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도 9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 2014년 tvN 드라마 ‘미생’에서 소심한 상사맨 박대리 역으로 주목 받은 이후만 따져도 출연작이 영화 20여편, 드라마 10여편에 달한다. “이렇게 연기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고 감사해요. 다만, 저를 좋게 봐 주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니까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긴 해요. 작품이 쌓일수록 부담감도 늘어나고요. 요즘엔 밤새 고민하느라 잠 한 숨 못 자고 촬영장에 나가는 날도 있어요.”

최귀화와 이준호(허색 역)가 보여주는 콤비플레이가 맛깔스럽다. 판씨네마 제공
최귀화와 이준호(허색 역)가 보여주는 콤비플레이가 맛깔스럽다. 판씨네마 제공

그래도 배우가 된 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전봇대에 붙어 있던 극단 단원 모집 포스터를 보고 홀리듯 극단에 찾아간 날부터, 처음 오른 무대에서 첫 대사를 잊어버린 아찔했던 순간과, 지방에서 연극 공연을 하느라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해 사무치도록 슬펐던 그날까지 모든 순간들이 그를 배우로 만들었다.

배우로 살면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관객의 생생한 반응을 접할 때다. 그가 악랄한 사복경찰로 나온 ‘택시운전사’(2017) 관련 기사에서 ‘저 사람을 길에서 만나면 죽여버리겠다’는 댓글을 보고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기방도령’에선 ‘최귀화 웃긴다’는 댓글을 보고 싶다”고 바랐다. “‘기방도령’은 제가 출연한 영화 중 첫 전체관람가예요. 올해 열 살 된 큰아들과 함께 보려고 예매해 뒀습니다. 아이들도 즐거워할 수 있는 휴먼드라마를 더 많이 하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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