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모여서 특정한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학술토론회를 의미하는 라틴어 심포지엄(symposium)은 그리스어 심포지아(symposia), 심포지온(symposion) 등에서 유래했다. ‘-posia’는 음주(飮酒)를 나타내는 접미어로 심포지아는 ‘함께(sym) 술을 마신다’는 뜻이다. 심포지온은 플라톤의 저서 명칭에서 보듯 ‘향연(饗宴)’으로 번역된다. 요즘 학술토론회에서는 커피나 물 등 음료는 제공되지만 술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뒤풀이 식사에서 술을 마시며 토론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심포지온과 유사점이 없지 않다.
□ 심포지온 참석자는 남자들이었고 술집이 아닌 개인 집에서 열렸다. 대개 12명 정도가 참석했고 많은 경우는 30명에 이르렀다. 심포지온은 간소한 식사로 시작해 술판으로 이어졌고 술 종류는 포도주였다. 제우스신에게 포도주를 바치는 의식을 시작으로 진행자의 지도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진행했지만, 흥청망청 끝날 때도 많았다. 술에 취하는 것을 민주주의로 인식했다. 포도주는 독재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취기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술에 취한 세계사’, 마크 포사이스)
□ 그리스인들은 포도주는 신성시했으나 맥주는 우습게 여겼고 맥주를 마시는 페르시아인을 야만인으로 경멸했다. 하지만 그리스 이외 지역에서는 보리와 물을 혼합하면 쉽게 발효되는 맥주가 널리 유행했다. 술에 관한 최초 기록도 맥주와 관련이 있다.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지역 수메르 문명의 설형문자로 이루어진 차용증에서 보리 황금 맥주 등으로 빚을 갚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영국에서는 임금의 일부로 맥주를 지급했고, 일터에서도 맥주를 제공했다. 우리 막걸리처럼 맥주는 고된 노동을 견디는 에너지였다.
□ 중세 교회도 술에 관대했다. 장례나 혼례 세례 등의 행사가 있을 때 교회에서 맥주를 나눠 마셨고, 주교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가난한 이들에게 맥주를 제공했다. 포도나무가 자라지 않는 지역에서는 성찬식에 필요한 포도주를 구하지 못해 포교가 쉽지 않았다. 중세 수도원은 맥주를 제조ㆍ판매해 관리ㆍ유지비를 충당했고, 수도사들에게 하루 일정량의 맥주를 배급했다. 수도사들은 갑갑한 수도원 생활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견뎠다. 최근 유럽 수도원 맥주 역사에 대한 책을 출간한 저자가 한국 목사인 것도 이채롭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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