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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범죄피해자 지원기금 74%가 운영비로 샌다

입력
2019.07.08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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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8년 만에 제도 개편 착수… “연말이면 예산 바닥나 신변보호자 숙소 외상으로 빌려” 

[저작권 한국일보]올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사용주요 사업/ 강준구 기자/2019-07-07(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올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사용주요 사업/ 강준구 기자/2019-07-07(한국일보)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라 강도나 살인 등 범죄행위의 피해자들은 병원 치료비 및 긴급 생계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구조금 등을 받으려면 한두 달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 가족이 장례비를 청구할 경우 장례를 치르기 전에 지원금을 받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이처럼 범죄행위의 피해자가 적시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정부 지원금 대부분이 기관 운영비 등 간접 지원비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가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운용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범피기금)’ 사업 개편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각 부처별로 지원체계가 분산돼 종합적 관리가 미흡하고 기금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국회 등에서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며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범죄행위로 인해 생명이나 신체에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1년 설치됐다. 형사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낸 벌금 및 민간 출연 또는 기부금 등이 재원이며 정부 예산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경찰과 검찰,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법무부가 이 기금에서 예산을 배정 받아 범죄 피해자 보호 사업을 벌이는 구조다.

문제는 기금 운용 및 편성 방식이다. 올해 집행되는 기금 총액 956억원 가운데 74%가 기관 운용비와 민간위원들에게 지급하는 수당과 같은 간접비. 반면 범죄 피해자에게 직접 나가는 예산은 구조금(100억원)과 긴급생계비(15억원), 신변보호(10억원), 치료비 (35억원) 등 167억원(17%)에 불과하다. 간접비용이 피해자 직접 지원보다 4배 이상 많다.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의 피의자 고유정(36)이 6월12일 오전 10시 제주동부경찰서을 떠나기 직전 경찰서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살인 범죄 피해자 가족은 정부로부터 구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올해 집행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 956억원 중 구조금은 100억원으로 10%에 불과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의 피의자 고유정(36)이 6월12일 오전 10시 제주동부경찰서을 떠나기 직전 경찰서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살인 범죄 피해자 가족은 정부로부터 구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올해 집행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 956억원 중 구조금은 100억원으로 10%에 불과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간접비는 범죄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의 운영비가 대부분이다. 검찰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법무부의 스마일센터, 여성가족부의 성폭력피해자 통합센터,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피해자 전담기관 등 정부 부처가 산하에 두고 있는 민간단체에 지급하는 보조금이 6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정부 관계자는 “범죄 피해자를 위한 심리상담도 중요하지만 예산의 대부분을 이런 간접 지원 사업에 배정하는 게 과연 과연 피해자 보호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기금의 간접비 편중도 문제지만 업무의 중복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범죄피해자지원 기관의 명칭에서 보듯이 업무의 차별성을 확인할 수가 없다. 법무부 산하 스마일센터 경우 강력 범죄 피해자를 위한 기관인데 검찰 산하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스마일센터 이용자의 상당 수는 성폭력 피해자다. 여가부 산하의 성폭력피해자 센터와도 업무가 겹친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무부는 올해 스마일센터를 13개에서 18개로 늘린다며 100억원의 기금을 집행키로 했다.

이러다 보니 피해자 직접 구제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이 장례비를 청구하는 경우, 장례를 치른 뒤 장례비가 나오기 일쑤다. 검찰이 기금 지급의 전권을 맡아 자금 집행이 늦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피해자를 일선에서 접촉하는 경찰에 배정된 예산이 법무부·검찰 예산(405억원)의 3% 수준인 12억원에 불과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찰 관계자는 “연말이면 경찰 예산이 바닥나 신변보호 대상자에게 지급하는 임시 숙소를 외상으로 빌리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고 하소연했다.

때문에 법무부가 기금 지원 사업을 피해자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법무부가 기금 편성 결정권자라는 점도 해결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부처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각 부처의 입장을 대변할 위원 1명씩을 연구용역에 참여키로 했다”며 “여러 부처가 기금 하나를 나눠 쓰는 특이한 구조라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겠지만 기금 개편에 대한 공감대는 이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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