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독립기념일은 영국의 식민지 시대를 종식하고 하나로 단결된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 시작이 된 날이다. 매년 7월 4일이면 미국인들은 하나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 퍼레이드와 함께 다양한 행사를 즐긴다.
올해도 축제의 시간이 어김없이 다가왔다. 하지만 분위기는 예년과는 달리 평화롭게 흐르지 않았다. 축제를 앞두고 링컨 기념관에서 불과 1.5㎞ 떨어진 워싱턴 기념비 부근에서는 반전 평화단체 ‘핑크 코드’를 비롯한 시위대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의미로 ‘베이비 트럼프’ 풍선을 띄웠고 백악관 인근 라피엣 공원에선 일부 시민들이 성조기를 불태우는 일도 벌어졌다. 수십년간 비당파적ㆍ비정치적으로 치러졌던 독립기념일 행사가 올해에는 ‘친(親)트럼프 대 반트럼프’의 분열상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4일(현지시간) 열린 미국의 243주년 독립기념일 행사 ‘미국에 대한 경례’는 마치 한 편의 ‘트럼프 쇼’를 방불케 했다. “주연은 전투기와 전차 등 각종 군사장비, 진행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는 게 미 언론들의 평이다. 재선 목적으로 국가 행사를 이용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정치색을 상당히 빼고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주력했지만, 같은 시각 인근에서는 반(反)트럼프 시위가 벌어지는 등 미국의 분열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미국의 정신’과 ‘하나로 뭉친 미국’을 계속 강조했다. 그는 건국부터 서부 개척, 여성 참정권 운동과 흑인 시민권 운동 등 미국 역사의 변곡점들을 언급하며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우는 한 미국이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연설의 주요 대목마다 미군의 주요 전략 자산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미 NBC방송은 “군대 스타일의 행사였다”며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연단에 들어서면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이 행사장 상공을 가로지르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미 공군의 B-2 전략폭격기와 F-22 전투기 등도 등장했고, 미 육군 주력 전차인 에이브람스 전차와 브래들리 장갑차도 전시됐다
독립기념일 군사 이벤트는 지난 2017년 프랑스 혁명기념일 군사 행진을 보고 감명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벤치마킹해 기획한 행사로 알려졌다.
독립기념일의 군사화와 정치화 논란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산의 부적절한 운용까지 문제가 됐다. 본래 전국 각지의 국립공원 시설 보수 및 확충에 배정된 예산 250만달러(29억3천만원 상당)가 이번 행사를 위해 사용된 사실이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의해 알려지며 비판을 면치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재하에 첨단 전투기와 호화 불꽃놀이가 워싱턴을 수놓는 동안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1776년 독린선언문이 채택된 필라델피아에서는 300여명의 시민들이 이민자와 망명자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려 이 중 33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집회를 기획한 단체 ‘네버 어게인 액션(Never Again Action)’은 “자유를 기념하는 오늘(독립기념일)도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미국에 살고 있다”며 이날 집회의 취지를 밝혔다.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도 수난을 면치 못했다. 이날 백악관 앞에서는 혁명공산당 지지자들이 반미 시위를 벌이며 성조기 두 장을 불태웠다. 미국 대법원은 국기를 불태우는 것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며 이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 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성조기 화형식’에 참여한 인원 중 남성 두 명이 경찰 폭행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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