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한류] 한류팬들 드라마ㆍK팝 즐기면서 문학도 연장선상에
이른바 K문학이라 불리는 최근의 문학 한류는 하나의 분석틀로 해석하기에는 국가별, 언어별로 양상의 차이를 보인다. 일본에서는 출간 3개월 만에 13만부가 팔리며 돌풍을 일으킨 ‘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동시대 젊은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활발히 번역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옥상에서 만나요’,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 등 한국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팔렸다.
영미권에서는 김언수와 정유정 등 장르성이 강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강세다. 애초 셜록 홈스의 고향이자 스티븐 킹, 존 그리샴이라는 걸출한 장르 작가들이 탄생한 곳인 만큼 ‘K스릴러’로 묶이는 작가들이 환영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 지상파 방송 NBC의 투나잇쇼에서는 2018년 ‘올 여름 읽어야 할 책’ 5권 중 하나로 정유정의 ‘종의 기원’을, 뉴욕타임스는 2019년 ‘올 겨울 읽어야 할 스릴러 6종’ 중 하나로 김언수의 ‘설계자들’을 선정했다. 편혜영의 ‘홀’은 지난해 고딕 호러 소설의 선구자인 미국 작가 셜리 잭슨의 이름을 딴 동명의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영미권보다 한발 앞서 한국문학 작품을 활발히 번역해왔던 프랑스의 경우 황석영 이승우 등 중견 남성 작가들의 작품이 오랫동안 잔잔한 인기를 누려왔다. 두 사람은 한국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번역 소개돼 있다. 황석영의 ‘해질 무렵’이 2018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 2018년 페미나상 외국어 소설 부문 최종심에 오르는 등의 성과로도 이어졌다.
국가별, 언어권별로 다종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는 한국 문학의 수용 양상은 해당 문화권의 특성과 관심사에 따라 상이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번역출판 국제 워크숍 ‘세계 속의 한국문학 그 다양한 흐름들’ 참석을 위해 모인 세계 각국의 출판인들은 △세계적인 페미니즘 문학 흐름의 선두 △각종 문학상 수상의 후광효과 △드라마 영화 등 기존 한류의 연장선상 △수준 높은 출판환경과 관계기관의 노력 등을 들어 한국문학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한강’이 쏘아 올린 작은 공…유력 문학상 후광효과
2000년대 후반 신경숙 김영하 조경란 등 일부 작가들의 작품이 영미권에서 호응을 얻기는 했지만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계 출판 시장(연간 1,400억달러 규모)의 20%(300억달러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영미권에 꾸준히 소개되면서 영어로 쓰여지거나 번역된 작품에 수여되는 맨부커상 수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영어로 번역된 한국문학이 유력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간 한국문학의 불모지였던 북유럽이나 중동 등 비영어권 국가에까지 한국 작품이 알려지게 됐다. 문학상 수상으로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또 다른 한국작품까지 조명을 받았다. 스웨덴의 최대 독립 출판사 나투르 앤 쿨튀르는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 직후 오히려 ‘소년이 온다’를 먼저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나투르 앤 쿨튀르의 편집자인 니나 아이뎀은 “(채식주의자가) 몽환적이고 아름답고 기묘하긴 하지만 때로는 소화하기 버거운 작품이었다”며 “오히려 ‘소년이 온다’는 한국적인 맥락에서 폭력, 트라우마와 집단기억을 다루고 있어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작가임을 먼저 소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투르 앤 쿨튀르는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흰’ 순으로 한 작가의 작품을 출간했고 세 작품 모두 스웨덴에서 성공을 거뒀다.
◇’페미니즘 문학’ 흐름 선두에 선 한국 여성 작가
페미니즘 문학은 한국뿐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 문학시장의 가장 주요한 트렌드 중 하나다. 국내에서 100만부를 돌파하며 하나의 현상이 된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도 이례적 돌풍을 일으킨 데는, 한국만큼이나 성차별이 만연한 일본에서 2030 여성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2월 일본에서 열린 조남주 작가와의 대담에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인 가와카미 미에코는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많이 읽히는 것은 서구의 페미니즘 소설과는 다른 역사적 유사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강, 정유정, 신경숙 등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개해온 러시아 AST 출판사의 해외사업 팀장인 키릴 이그나티예프는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자신들의 책에서 전하려고 애쓰는 강력한 페미니즘 메시지는 러시아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며 “그 메시지가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러시아에서 높은 잠재성을 지니게 될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음악, 영화 등 앞선 한류가 닦아놓은 토대
2000년대 초반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국 소설은 ‘겨울연가’ ‘가을동화’ ‘대장금’ 등 인기 드라마의 원작이었다. 드라마와 영화, K팝으로 대변되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한류를 즐기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서는 한국문학 역시 한류의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진다. 대만 맥전 출판사의 편집자 우웨이전은 “대만 독자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대부분 드라마와 휴대폰 게임으로 먼저 접한다”며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배우(김수현)가 읽었던 책(‘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대만에서 열독됐고, 영상물의 원작인 책은 일정 수준의 판매량이 보장될 정도”라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인도네시아 BACA출판사 공동설립자인 아니사 하산 시합은 “한국의 지속적인 관광, 문화, 예술의 홍보 활동 덕에 수백 권의 아동 도서와 성인 대상 소설이 인도네시아어로 번역돼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류를 통해 생성된, 한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한국어와 한국문학 열풍으로 이어진다. 2017년 출간된 6권짜리 ‘한국문학 시리즈’는 당시 호찌민방송이 ‘이번 주에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 올리는 것을 비롯해 모든 언론이 문예코너에서 주요하게 다루기도 했다.
◇수준 높은 출판환경, 관계기관의 꾸준한 노력
해외 출판 시장에서 한국문학이 거둔 성취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한국문학번역원 같은 정부 산하 전담기구의 적극적 노력과 출판 저작권 중개 에이전트들의 끊임없는 시장 개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2001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은 한국문학의 번역과 출판, 해외에서의 한국문학 행사를 지원하고 번역 아카데미 같은 교육기관을 운영하며 한국문학과 해외 독자를 연결하는 일을 도맡고 있다. 특히 한국문학 기사 게재를 지원하는 ‘해외 문예지 한국문학 특집호’ 사업을 통해 지난 한해 각국 언론에 한국문학 소개 기사를 287건 게재시키기도 했다.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과거에는 한국문학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해외 출판인이나 역자가 제안을 해왔다면, 이제는 저자와 역자, 에이전트가 수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자생적 시장을 만드는 데 더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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