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대천항을 출발할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전적으로 엄마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여든여섯 번째 생신 모임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우리 형제가 단체 채팅방에서 논의하던 때, 큰언니가 의견을 냈다. “엄마가 섬에 가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 한갓진 곳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면 어떨까?”
제주도나 울릉도 같은 구체적 지명 말고, ‘섬’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일종의 시어(詩語)였다. 시인 정현종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문장에서처럼 은유로 기능하는 단어. 그런데 나이든 엄마는 하고많은 볼거리를 놔두고 왜 섬에 가고 싶다고 하는 걸까? 질문할 새도 없이 큰언니가 나에게 명을 내렸다. 아버지 생신 때 우리 가족이 여행하기 좋은 섬과 숙소를 알아보라고.
팔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난 나는 지금껏 실무 역할을 떠안았다. 스물에도 마흔에도 그랬으며, 아마 예순 살이 넘어서도 손위 사람들의 의중을 파악해 손발 노릇을 하고 있을 공산이 높다. 잠시 고민하던 내 머리에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다. 재작년인가, 오래 알고 지내는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님이 점심식사 자리에서 들려주신 여행담이었다. ‘삽시도’라는 낯선 섬에서 일주일 휴가를 보내고 온 선생님은 당신의 어린 시절에 만났던 삽시도 개척자 박영삼 선생의 생애에다 인근 원산도에서 행해지는 성황제의 내력까지 맛깔스럽게 들려주시면서 내게 말했었다. “언제 시간 내서 그 섬에 꼭 다녀와요. 한가로이 쉬면서 생각을 덜어내기에는 그만인 곳이거든.” 그렇게 해서 이번 아버지의 생신모임 장소는 삽시도가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부리기 무섭게 주인 내외는 마침 썰물 때라며 언덕 너머 해안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100미터쯤 언덕을 오르니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폐타이어로 만든 가파른 계단이 해안까지 나 있었다. 멋진 풍경에 압도당한 가족들이 계단을 따라 우르르 내려갔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몇 년 전 무릎 수술을 한 엄마에게 빗물에 젖어 미끄러운 타이어 계단은 딱 보기에도 위험했다. 숙소 주인 역시 나이든 어른이나 아이들이 오르내리는 건 무리라며 언덕 위에서 쉬실 것을 권했다. 아버지와, 평소 효심이 지극하다고 자부해온 내가 엄마와 함께 언덕 위에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텅 빈 해안으로 뛰어든 가족들이 바위 사이에서 뭔가를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혹시 봉지 가져온 사람 없어?” 그 말이 들리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섰다. 숙소를 떠나기 직전, 두루마리 비닐 팩을 둘둘 말아 바지 주머니에 챙겨 넣길 천만다행이었다. “뭐가 많은가 봐. 봉지도 가져다줄 겸 나도 내려갈 테니 두 분은 여기서 쉬고 계셔요.” 서둘러 가보니 세상에나! 바위마다 고둥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그렇게 다들 해산물 수확에 한참이나 정신이 팔려 있는데 막내가 소리쳤다. “어머? 엄마 좀 봐. 저 위험한 계단을 거의 다 내려왔어.” 아버지는 어느새 우리 무리에 합류했고, 혼자 언덕에 있던 엄마마저 아이처럼 솟구치는 충동을 이기지 못해 엉금엉금 타이어 계단을 내려온 게 분명했다. 그 아찔한 곡예를 내 눈으로 보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은 마음뿐이었다.
“좀이 쑤셔서 말이지.” 엄마가 더없이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숙소 주인한테 물어보니 반대쪽 해안에서 바지락도 캘 수 있다고 하네. 참, 좋다. 이렇게 만시름 내려놓고 바다생물 수확하는 재미가 몹시도 그리웠거든.” 이거였구나, 엄마가 섬 여행을 고대했던 이유가…. 흡사 아이처럼 얕은 물에서 꼬시래기 건져올리는 데 푹 빠진 엄마의 뒷모습을 보자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이제야 나이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고 잘난 척하고 다녔는데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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