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특유의 말맛 어순 등 제약… 동포 출신 번역가들이 주로 활약
한국 문학 콘텐츠가 해외 시장에서 주목 받는 배경에는 번역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다. 기존의 언어를 한 단계 확장해 새로운 언어로 승화하는 작업이다. 스티븐 킹 작품 번역으로 유명한 번역가 조영학은 저서 ‘여백을 번역하라’에서 “번역은 다시 쓰기(rewriting)이다. 여백을 번역해야 한다. 여백은 기호가 숨을 쉬어야 할 공간이며 번역가의 상상력이 살아나는 공간이다”라고 적었다. 문학 한류 시대, 한국 문학 작품만큼이나 번역에도 도약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번역출판 워크숍’에 참석한 해외 출판사 편집자들과 국내 관계자들에게 한국 문학 번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2016년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는 수상 이후 여러 차례 오역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어에서 생략된 주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일부 텍스트를 왜곡해 ‘창작’했다는 지적이 한국 문단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해외로까지 논란이 번지자 한강 작가는 2018년 1월 오역으로 지적된 부분 60곳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역자의 한국어가 아직 서툴다는 것을 느꼈지만, 도착어인 영어 표현이 좋아서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에 결정적 장애물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영역본을 받아본 뒤 원문과 번역본의 대조 작업을 꼼꼼히 하지 못한 부분을 후회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해외 출판 관계자들 역시 한국 문학의 번역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독일에서 일본과 한국 문학을 소개해온 카스 출판사의 카트야 카싱 대표는 한국 문학 작품의 번역물에 대해 “가독성이 낮고, 겉만 매끄러워 출간 작업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어순, 문장 등에서 발생하는 오류와 오역이 적지 않고, 작가의 목소리인 ‘톤(ton)’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번역가는 텍스트를 반드시 이해해야 하며, 그 이해가 표면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내 출판 전문가들은 ‘한국말을 잘하는 원어민 번역가’가 부족한 게 근본적 문제라고 분석한다. 정유정 소설가의 작품을 해외 20개국에 번역 출간해온 은행나무 출판사 주연선 대표는 “원어민 번역가는 현지 언어 감각을 잘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크지만, 인력이 아직 많이 확보되지 못해 각 언어권의 동포 출신 번역가들이 주로 번역을 맡아 왔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의 번역 출간 사업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관리하는 원어민 번역가의 경우 영어권은 20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언어권은 절반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윤영 한국문학번역원 문학향유팀장은 “번역원이 운영하는 번역아카데미에서 해외 대학 한국학과 학생을 초청해 2년 과정으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10년째 운영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투자해 번역 인력 양성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언어 능력뿐 아니라 양국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연결하려는 번역가들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인 대만에선 세월호 참사를 다룬 ‘거짓말이다’(작가 김탁환)와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를 다룬 ‘82년생 김지영’(작가 조남주) 등 주로 사회 이슈를 다룬 한국 소설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대만 맥전 출판사의 우웨이전 편집장은 “양국 문화를 이해하면 현지 독자의 감정에 훨씬 더 잘 이입할 수 있고, 그 나라 사회 이슈와 관련된 작품을 선별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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