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 등 불매 리스트 떠돌아… 연관 없는 기업들ㆍ점주까지 불똥
일본의 보복성 수출 규제 조치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본기업 제품의 불매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 리스트가 떠돌고, 일본 여행을 취소하자는 주장이 나오며 반일 감정이 점점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 엉뚱한 곳으로 불통이 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4일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본기업의 제품이 상세히 적혀 있는 불매 리스트가 퍼지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일본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를 요청합니다’, ‘일본 전 지역 여행 경보지역 지정을 청원합니다’ 등의 글도 올라와 수천명의 사람들이 청원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불매 운동을 통해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야 한다”며 일본의 조치에 강력하게 대응하자는 입장이다.
이 리스트에는 전쟁범죄에 가담한 기업인 전범기업부터 전자, 카메라, 자동차, 악기, 의류, 사무용품, 편의점, 화장품, 주류 등 실생활과 밀접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게임과 영화배급사 등 콘텐츠 관련 기업까지 100여개의 일본기업이 나열돼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니콘이나 소니를 비롯해 도요타, 혼다, 미쓰비시, 야마하, 유니클로, 데상트, 무인양품, 시세이도, DHC, 아사히, 기린 등 현재 국내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카페 등에서는 불매 운동 리스트와 함께 ‘당분간이라도 일본 제품 쓰지 말고 일본 여행도 가지 말자’, ‘국산품을 구매하자’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와 있다.
불매 운동 리스트에 올라온 기업들은 곤란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등 정치적인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내에서 크고 작은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며 눈총과 질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장기적으로 이어지며 한일 갈등이 더욱 크게 번질 경우 이들 기업은 매출은 물론 이미지 등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신차를 출시하며 국내 자동차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토요타나 혼다의 경우는 더욱 난처해 하는 모습이다.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일단은 진행되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입장”이라며 언급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했다. 전범기업으로 지목된 한 기업 관계자는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회사 이름이 언급되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국내 소비자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패션과 편의점 업계도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 2005년 국내에 진출한 이후 전범기업이나 우익단체 후원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던 패션기업 유니클로는 이번에도 불매 운동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유니클로 측은 1984년에 일본에 첫 매장을 열어 전범기업과는 관련이 없고 일본 우익단체 등 그 어떠한 정치 단체도 후원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롯데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편의점 세븐일레븐도 불매 리스트에 올랐다. 세븐일레븐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미국의 세븐일레븐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일본 회사라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편의점 문화가 일본에서 발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양국의 갈등이 깊어지는 빌미를 제공해선 안될 일”이라며 “이번 경제보복 조치는 양국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분석했다. 국내 한 편의점 업체도 “편의점 가맹점주들은 단지 한 명의 자영업자일 뿐이다. 불매 운동에 앞서 그 분들이 왜 피해를 봐야 하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라고 당부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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