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계 악화는 ‘2극 체제’의 시작을 예고한다. 지난 수십 년을 주도국 간 협력으로 요약한다면 다음 수십 년은 제로섬 경쟁이 될 것이다. 이미 세계화와 국가 간 유대의 심화는, 완곡히 말해 ‘디커플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가와 지역은 주도권 회복을 명분으로 스스로를 경제 지정학적 소단위로 묶고 있다.
이 경향은 미국ㆍ유럽ㆍ브라질에서 부품을 구매하고 170여국에 제품을 팔며 5G네트워크 확장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의 대형 다국적 기술 기업인 화웨이를 둘러싼 다툼에서 나타난다. 최근까지 서방 기업들은 저렴하면서 질 좋은 화웨이 제품을 반겼다. 그의 존재로 미국ㆍ유럽의 기술 회사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게 됐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 회사가 화웨이에 핵심 부품을 팔지 못하게 하고 동맹국에게도 똑같이 하도록 함으로써 세계화를 본격적으로 뒤엎어 버리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화웨이와 다른 ‘우량 중국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공급망에 있어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중국 잠재 산업스파이에 대한 미 정부의 경고는 많은 미국 대학이 중국 기업 및 교육기관과의 관계를 단절토록 했고, 미국 신생 기업은 중국의 투자를 거부하거나 받지 못하게 됐다. 놀랄 것 없이 화웨이는 해외 스마트폰 매출이 40% 줄었다고 보고했고 향후 2년 동안 매출이 300억달러 정도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대립의 이면에는 최고를 위해 경쟁하는 야심찬 두 독재자, 트럼프와 시진핑이 있다. 이 둘은 국가 재활성화 노선을 추구하며, 기본적으로 국가의 세계적 위상에 변화를 가져 왔다.
트럼프는 현 세계 질서에서 미국이 타국에 비해 가져가는 이익이 적어 상대적으로 쇠퇴한다고 믿는다. 중국이 강하게 성장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미국이 약해졌다고 확신하는 그는 ‘창조적 파괴’를 내세우며 세계무역기구(WTO)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등을 약화시키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무역협정을 폐지했다. 이는 각 나라가 미국이 정하는 조건대로 다시 양자 협상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 사이 시진핑은 중국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자신만의 경제외교 정책을 도입했다. 또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중국을 저기술 제조업에서 인공지능(AI) 같은 최첨단 기술의 글로벌 리더로 지위 상승시키려 하고 있다. 그의 계획은 서방의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해 서방 기업을 중국에서 몰아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이 구상하고 있는 기술 혁명은 빅데이터 독재 체제를 완성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적어도 100만명의 위구르 무슬림을 강제수용소에 가둬놓은 신장에서 실행 중인 ‘21세기 감시체제’를 통해 권력을 유지할 것이다. 또 국경 너머 유라시아ㆍ아프리카ㆍ환태평양에 걸쳐 중국의 영향력을 확립하기 위해 구상한 일대일로라는 초국가적 기반시설에 1조달러를 투자하려고 한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자국 내 혼란을 초래하며 진행한 지정학적 전략은 이미 진행 중이었던 것을 가속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볼 때 세계의 권력 균형은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아가고 있었으므로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미중 관계는 더 이상 선진국과 개도국 간 상호 보완 관계가 아니다. 더 많은 분야에서 같은 것을 놓고 경쟁하는 제로섬 관계다. ‘차이메리카’는 더 이상 없다.
이런 변혁은 유럽에 충격이었다. 이제 유럽은 미중의 대립에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유럽연합(EU) 대외관계위원회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 74%, 스웨덴인 70%, 프랑스인 64%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중립적 입장을 원한다. 이는 중국에 유리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중국은 유럽과 외교적 소통을 모색했는데, 영향력 있는 중국학자 옌쉐퉁은 “중국과 미국이 싸워도 유럽은 최소 중립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유럽에 있어 중립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미중의 분리에 따라 양측은 유럽에 한쪽 편을 들라고 할 것이다. 또 유럽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경제 모델과 폐쇄시장으로 인해 유럽 기업들이 당면할 위협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최근 EU 집행위원회 보고서는 중국을 ‘체계적 경쟁자’로 규정하며 적절한 중국 투자를 걸러내기 위한 새로운 제도를 제안했다.
문제는 유럽과 중국 관계가 식어가는 지금, 미국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규칙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하고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다자주의를 원하지만, 트럼프와 시진핑은 완전히 다른 것을 원한다. 유럽의 유권자들은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지만, 다행히 EU와 주요국 정부는 유럽의 주권에 대해 심사숙고 해왔다. 유럽이 AI와 다른 기술 영역에서 독자적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영향력을 잃을 것이라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미국의 추가 제재, 중국의 투자, 기타 외부 압력에 맞서 유럽의 자주권을 어떻게 보호하느냐다. 확실한 답은 없지만 유럽이 성공하면 트럼프와 시진핑의 싸움에 이용되기보다 동등한 세력으로서 ‘삼극 체제’를 이룰 수 있다.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집행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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