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의 핵심 증인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최근 주요 진술을 번복하면서, 이 전 대통령이 김 전 실장을 회유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검찰은 보석 석방 조건 위반이란 입장이다.
4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이 보석석방 되고 4개월간 사건관계자들이 작성한 사실확인서가 5건 제출됐다”며 “피고인이 기소된 뒤 1년 동안 못 받았던 사실확인서가 이렇게 단기간에 여러 건 작성된 것을 보면 피고인이 보석조건을 위반한 게 아닌 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풀려난 뒤 사건관계인들을 만나 기존의 불리한 진술을 뒤집도록 회유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이 전 대통령의 보석 석방에는 ‘재판에 관련된 사실을 아는 사람과 만나거나 연락해선 안되며 제3자를 통한 통신도 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어길 시 보석 취소로 재수감될 수 있다. 석방 때 낸 10억원의 보증금이 몰수될 수도 있다.
검찰은 특히 김 전 실장의 자필확인서를 문제 삼았다. 김 전 실장은 자필확인서를 통해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이 청와대 본관에 갔다”는 기존 검찰진술을 뒤집고 “이 전 대통령과 이 전 부회장이 청와대에서 만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실장의 진술 번복이 눈길을 끄는 건, 이 전 대통령이 초선의원이던 시절부터 15년여간 손발을 맞춰 온 인물이어서다. 김 전 실장은 이 전 대통령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집사 중의 집사’ ‘성골집사’ 등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수사 착수 단계에서부터 검찰이 과연 김 전 실장의 ‘입’을 열 수 있을 지 주목받았다.
김 전 실장은 이후 검찰 수사 단계에서 국정원 뇌물의혹에 대해선 “국정원 직원에게서 미화 10만달러(약 1억원)를 건네 받아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측에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삼성의 소송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 전 대통령과 이학수 전 부회장이 청와대에서 만나는 걸 봤다”고 했다. 이런 진술들이 쏟아지자 김 전 실장이 저축은행비리로 징역형을 살고 아내가 생활고로 목숨을 끊었을 때, 이 전 대통령 측에서 ‘일절 모르쇠’로 일관한 것에 심한 인간적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검찰 측은 “1심부터 쟁점이 된 내용에 대해 이제 와서 갑자기 뒤바뀐 진술서가 제출된 점 등을 볼 때 괜한 의혹을 제기하는 게 아니다”며 “확인해보니 김 전 실장의 진술번복은 청와대에서 김 전 실장의 직속 부하였던 김모 행정관의 거듭된 부탁에 따른 것이었다”고 밝혔다. 김 전 행정관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에 따라 보석 석방 중 접견이 허용된 인물이고, 실제 석방 뒤 이 전 대통령은 김 전 행정관을 만났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반발했다. 사실확인서를 제출하는 건 변호 활동의 일부일 뿐이란 주장이다. 변호인은 “사건관계자와 연락하는 건 전직 대통령 품위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재판부는 일단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보석은 유지하되, 좀 더 세밀하게 점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이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또 다른 집사,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끝내 불출석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