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마리엔탈에 방적공장이 들어섰다. 농부들은 평생 지어온 감자 밭을 버리고 옷감을 생산하는 노동자로 인생 경로를 수정했다. 임금은 적고 노동강도는 셌다. 그러나 선량한 마리엔탈 사람들은 매달 안정적으로 나오는 월급에 감사하며 삶을 꾸려 갔다. 이들의 운명이 바뀐 건 1929년 대공황으로 오스트리아 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다. 공장은 멈췄고 1,200명이 넘는 마을 사람은 모두 해고됐다. 평생을 바친 생계 수단을 박탈당했지만 이들은 분노하지 않았다. 정부를 향해 보상과 지원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스스로 침잠했을 뿐이다. 1971년 마리엔탈 마을의 몰락을 조사한 연구보고서의 결론은 이렇다.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
‘일자리의 미래’는 고용 없는 성장이 불러온 대실업 시대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한 책이다. 인공지능(AI)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의 등장으로 인간의 일자리는 빠르게 증발하고 있다. 일자리 대란을 우려하는 경고는 넘쳐나고 해법도 쏟아진다. 그러나 엘렌 러펠 셸 미국 보스턴대 저널리즘 교수는 일자리를 대하는 발상부터 뒤집으라고 조언한다. “일자리에 사람을 끼워 넣지 말라. 사람에 맞춰 일자리를 창조하라.” 일자리의 노예가 아니라 주체로 살아 나갈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일이 전부였던 시대였다. 평범한 직장인과 노동자들은 승진을 위해, 잘리지 않기 위해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일에 투신해 왔다. 일에 절대 복종할 때 삶은 진보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이 명제는 유효하지 않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삶의 질은 퇴보하고 있다. 소득은 늘지 않고 격차만 커졌다.
중산층은 AI에게 일자리까지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흔히 로봇이나 기계가 일자리 시장에 등장하면 단순 노동부터 대체될 것이라 보지만, 셸 교수는 복잡한 기술을 보유한 전문직 노동자들이 더 먼저 사라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식당에서 물을 따라주는 일은 인간에겐 쉽지만, 기계에게 어려운 일이다. 반면 회계ㆍ법률ㆍ금융 등 나름의 분석 역량을 요구하는 일은 인간에겐 어렵지만 기계에겐 쉽다. 고용주 입장에선 고임금을 받는 전문직들 대신 기계를 들여 놓는 게 비용 측면에서 나을 수 있다. 일자리는 더 이상 노동자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일자리의 배신이다.
각국이 내놓는 해법은 일자리 ‘양’ 늘리기다. 당장 고용률을 올리는 게 급급한 정부는 기업에 손을 벌린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달라고 세금도 줄여주고 특혜를 제공한다. 그러나 돌아온 건 임금도 낮고 불안정한 임시직이 대부분이다. 기업은 일자리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을 불린다. 문제는 일자리의 양이 아닌 질이라고 외치면서도 정책은 거꾸로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공감하고 고민하는 문제다.
그렇다면 좋은 일자리란 과연 무엇일까. 돈을 많이 주고, 지속 가능하면 좋은 일자리일까. 셸 교수는 기준 자체를 새로 만들자고 말한다. 먼저 일자리 창출의 주체를 바꿔야 한다. 기업이, 시장이 공급하는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가정 의료와 돌봄 서비스는 기업은 관심을 두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자리다. 노동자가 존중되는 근무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협동조합을 활성화하고 근로시간 단축,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도 필수다. 더 이상 일자리가 선물로 주어지던 시대는 끝났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기업, 정부, 노동자 모두 나서야 한다. 셸 교수는 특히 정책을 만드는 정부 당국자들과 정치권의 의지를 강조했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자리의 미래
엘렌 러펠 셸 지음ㆍ김후 옮김
예문아카이브 발행ㆍ488쪽ㆍ1만8,000원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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