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 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한국일보>
홍콩 시위로 중국 정부가 고수해 온 ‘하나의 중국’ 원칙이 흔들리는 가운데, 최근 양안(중국ㆍ대만) 관계마저 심상치 않다. 1978년 대만과 단교 후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던 미국이 지난달 40년 만에 돌연 대만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하는가 하면, 대만은 중국에 ‘일국양제(1국가 2체제)’를 포기하라는 말까지 하고 나섰다. 대만을 자국 ‘지방’으로 보던 중국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 무력통일 경고한 中, 2조원어치 무기 파는 美
3일(현지시간) 연합보 등 대만 언론에 따르면 대만의 중국 담당부처인 대륙위원회의 천민퉁(陳明通) 위원장은 전날 미국에서 열린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행사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올해 초 발언과 관련해 “대만은 주권국가로, 일국양제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시진핑 주석은 “평화통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무력 사용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라며 대만에 무력통일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이후 양안 간 군사 긴장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사실 양측의 군사력은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군사력평가 전문기관인 글로벌 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중국은 3위, 대만은 22위다. 중국은 병력 218만 3,000명, 군용기 3,187대, 탱크 1만3,050대, 군함 714척을 보유하고 있고, 이와 별도로 핵탄두 290기도 보유한 핵보유국이다. 반면 대만 전력은 병력 21만 5,000명, 군용기 837대, 탱크 1,855대, 군함은 87척 정도다.
군사력 비대칭 상황에서 대만은 군 현대화를 위해 미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7일 미 국방부는 대만에 미 육군 주력전차인 ‘M1A2 에이브람스 전차’ 108대와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250기, 대전차미사일 ‘토우(TOW)’ 1,240기 등 총 20억 달러(2조3,400억원) 규모로 무기 수출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4월 미 정부가 대만 측의 신형 ‘F-16V’ 제트기 66대 판매 요청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데 이어 올해만 벌써 두 번째다.
이 소식에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를 결연히 반대한다”면서 즉각 반발했다. 그러나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은 지난달 24일 ‘미국의 대만 무기 FMS 판매 결정과 전략적 함의’ 보고서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에 대만에 판매를 결정한 무기의 모델과 성능이 중국을 직접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본다”고 전했다. 이번에 미국이 판매하는 무기들이 최신형도 아닌데다, 기존의 노후 모델을 대체하는 수준이라 대만의 군사력을 현저하게 높일 만큼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 트럼프, 안보 협력 강화 ‘대만카드’로 中압박
그러나 중국은 대만의 뒷배 노릇을 하며 자신들을 압박해오는 미국이 거슬릴 수밖에 없다. 미 버크넬대 주즈췬(朱志群) 중국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미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만은 항상 미중 관계에서 미국이 쓸 수 있는 ‘체스 말’이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만과의 군사 안보 협력을 노골적으로 강화하면서 전임자들에 비해 훨씬 과감하게 ‘대만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은 앞선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가 공식화되고 있으며, 판매 주기도 잦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3월 ‘대만여행법(TTA)’에 서명한 이후 미 국방부 관리들의 대만 방문이 가능해지면서, 방산 협력이 대놓고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과거 미 행정부들은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2~3년 주기로 조정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중국의 대만 위협 등 ‘상황 대 상황’에 따라 무기판매 시기가 결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기 판매 발표 시기가 공교롭다는 점도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6월 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미국은 ‘인도ㆍ태평양 전략보고서(IPSR)’라는 공식 문서를 통해 대만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했다. 외신들은 “미국이 그간 견지해 온 ‘하나의 중국’ 원칙에서 명백하게 벗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날 샤오위안밍(邵元明) 중국 연합참모부 부총참모장은 “누구든지 대만을 중국에게서 분리하려는 이가 있다면, 중국군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조국 통일을 지켜낼 것”이라며 미국에 경고했다.
그러나 미 CNN 방송은 지난달 24일 전문가와 주요기관 연구를 토대로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와 전력, 국제사회(특히 미국)의 대응 향방을 고려할 경우 “전면 침공은 중국인민해방군에게도 벅차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침공 시나리오를 보면 대만의 항구와 군용 비행장 등 주요 시설을 먼저 폭격한 후 제공권을 장악해 대만 서쪽 해안부터 지상 병력을 투입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국이 입는 타격이 만만찮을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군이 대만 서쪽 해안 대신 중국 본토에서 가까운 곳이나 타이베이 같은 전략적 요충지로 상륙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지만, 대만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들 지역에 터널을 파고 벙커를 만드는 등 대비해왔다고 CNN은 전했다. 미 버지니아주 소재 싱크탱크 ‘프로젝트 2049 연구소’의 이언 이스턴 연구원은 “전쟁 계획을 포함한 대만의 전체적인 방위 전략은 중 인민해방군의 침공을 저지하는 데 특화돼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대만이 1984년 이래 매년 ‘한광(漢光) 훈련’ 실시 등 중국 침공 가능성을 가정해 격퇴 능력과 방어 태세를 점검해 온 것도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로 꼽힌다.
◇ “양안 무력충돌, 가능성 낮지만 확실한 위험"
결정적으로 양안 간 무력 충돌 발생 시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높다는 게 가장 큰 부담이다. 미국의 대만 관계법에는 ‘대만 주민의 안보 혹은 사회, 경제적 시스템을 위협하는 어떤 힘의 사용이나 강압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미국의 전투능력을 유지한다’는 문구 등 유사시 미국의 개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근거가 존재한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미-대만 간 연합훈련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대만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대만 해병대 1개 소대가 미 하와이로 건너가 미-대만 단교 이후 사상 첫 연합훈련을 하더니, 지난해에는 미 상원에서 ‘2019년 국방수권법안’(NDAA)을 통해 양국 합동군사훈련을 공식화했다. 올해 4월에도 대만 순항훈련 함대가 미국과 연합군사 훈련을 벌이던 오세아니아 도서국가 팔라우를 방문해 중국의 반발을 샀다.
다만 전문가들은 실제 양안 사이의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 랜드 연구소 데릭 그로스만 연구원은 “가능성은 낮지만 확실히 위험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차이 총통 아래에서 (무력 충돌 발생) 위험도가 1%에서 5% 정도로나 올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라면서도 “중국은 핵보유국이고, 역시 핵보유국인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물론 이 정도도 불편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며 우려했다. 주즈췬 교수도 긴장 고조 가능성이야 있지만 “어느 쪽도 군사 대결을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대만 간 외교·경제적 대립은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미중 G2의 갈등이 높아질수록 대만에서의 파열음도 거세질 운명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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