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4일 국내외의 우려와 비판에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에 해당하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를 단행했다. 과거사를 둘러싼 외교 문제에 무역을 끌어들인 조치로,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관계가 정면 충돌하면서 끝 모를 터널로 진입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0시부터 지난 1일 예고한 반도체 필수소재인 포토레지스트(감광액)와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TV와 스마트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의 한국에 대한 수출절차를 엄격화했다. 일본은 그간 자국 기업이 이들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 한번 허가를 받으면 3년 간 개별 품목에 대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포괄적 수출허가 제도’ 대상으로 포함시켜 왔지만 이날부터 이 같은 우대조치는 폐지됐다.
일본 기업들은 개별 품목을 수출할 때마다 경제산업성에 수출허가를 신청하고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제품명 △판매처 △수량을 신청서류에 기입하고 계약서 등 필요한 서류를 첨부해 제출해야 한다. 경제산업성을 이를 바탕으로 △상대국에 제품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제품 사용목적이 적절한지 △평화ㆍ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지 △수출대상 기업이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여부를 심사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일본 정부는 신청에서 허가 여부 결정까지 90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밝히고 있으나, 서류 미비 등 엄격한 심사를 이유로 자의적으로 운용할 경우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이를 활용해 징용문제 등에서 한국 측의 양보를 이끌어 내는 압박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만 절차를 강화해 사실상의 수출 제한에 나선 것을 두고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안전보장 상의 이유’를 명분으로 내세워 반박하고 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 21조에는 안전보장 상 필요가 있을 경우 예외조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군사전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 안보우방국을 대상으로 수출 허가 신청을 면제해 주는 ‘백색 국가’에서도 한국을 제외하는 절차를 시작했다. 사실상 2단계 조치다. 오는 24일까지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다음달 중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한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방침대로 한국이 백색 국가에서 제외될 경우, 계약 건마다 수출 허가가 필요하다. 그 대상은 탄소섬유, 집적회로, 전자부품, 공작기계 등으로 수출규제 강화 대상품목이 대폭 확대될 수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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