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마다 식물의 시간으로 살고 싶단 생각이 간절해진다. 봄에 연초록으로 태어나고, 여름에 진초록으로 무성하다, 가을에 온갖 색깔을 빛내고 사그라지는. 겨울에 죽은 듯 몸을 한껏 움츠려 보여도 새 봄이 오면 부활하듯 꽃을 피우는.
식물의 시간은 식물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땅에 뿌리내린 식물은 움직일 수가 없으니 주변 햇빛과 바람이 바뀌는 대로 그저 제 몸을 주어진 조건에 맞춰 살아갈 뿐이다. 겨울에는 꽃눈이 얼어 죽을까 봐 두꺼운 털옷을 입혔다가, 봄이 되면 뿌리로 조심조심 땅의 온도를 더듬어보며 꽃을 피울 시기를 결정한다. 옴짝달싹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저마다 생존 전략을 갖고 최선을 다해 생존한다. 그 태도의 결과가 바로 식물의 시간이다.
인간은 식물처럼 햇빛으로 양분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으니 온전한 식물의 시간으로 살고 싶은 건 그저 바람일 것이다. 식물 경작을 생업으로 하는 경우가 그나마 가장 식물의 시간에 가까울 수 있겠다. 방학, 안식년, 동안거와 하안거는 어쩌면 식물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 안으로 끌어오려는 시도 아닐까.
‘고향마을’은 황베드로 수녀의 동시 전집으로, 1970년 출간된 첫 시집 ‘조약돌 마을’부터 지금까지 출간된 13권의 시집이 신작시와 함께 묶여있다. 820쪽이나 될 정도로 두툼한 이 동시집에 실린 동시 대부분은 자연을 노래한다. 50년간, 50번이나 보아온 식물의 시간이 담겨있는 셈이다.
“늦가을 서리 밭에/들국화 모종을 했다//아!/나이 한 살/더 먹는 게 좋다//내년 봄에 움틀/국화를 생각하면”(‘국화 모종’ 전문)
나의 하루, 나의 일 년은 식물의 시간이 될 수 없다 해도 전 생애는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노수녀 시인이 50년간 14권의 동시집으로 기록해 온 시간의 두께에서 식물의 시간을 읽고 나니, 정말 그럴 수도 있을 듯하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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