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나 가전ㆍ전자제품이 아닌 ‘가방 리콜’ 들어 보셨나요?”
직장인 서민희(39)씨는 지난 5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전화를 해온 곳은 인천공항에 있는 한 면세점이었습니다. 면세점이 전화를 건 이유는 핸드백 때문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서씨는 올초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면세점에서 핸드백 브랜드 ‘덱케’의 ‘하프백’을 구입했습니다. 덱케는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 브랜드 ‘한섬’에 속한 브랜드로, 지난 3월 온라인 전용 상품으로 전환됐죠.
서씨가 구입한 하프백은 10만원대로 실용성을 강조한 가방입니다. 가죽 소재로 제작됐지만 가벼워 20,30대 여성들이 ‘데일리 백’으로 선호할 조건을 갖췄죠. 하지만 서씨는 이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어깨 스트랩(가죽끈)이 생각보다 쉽게 해지는 통에 들지 못하게 됐으니까요. 그렇게 잊고 지내던 가방을 소환한 건 면세점이었습니다.

면세점 측에선 서씨가 구입한 덱케 가방의 ‘리콜(해당 회사가 제품의 결함을 발견하여 보상해 주는 소비자보호제도)’ 소식을 전했습니다. 덱케에서 하프백의 결함을 발견하곤 이미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AS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었던 거죠. 서씨는 생각지도 못한 서비스에 기분 좋게 AS를 신청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기까지만 해도 매우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조치였는데, 감동은 그게 끝이 아니었죠.
하프백을 들고 다녔을 고객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대용 가방’까지 준비해 놓은 겁니다. 덱케에서 인기리에 판매되는 에코백을 택배로 배송한 것이죠. 일주일이나 걸리는 하프백 수리 기간 동안 대신 들 수 있게 말입니다. 25년 경력의 한 패션업계 종사자는 “자동차나 노트북 등의 리콜은 들어봤어도 ‘가방 리콜’은 처음 들어본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알아보니, 수시로 고객들의 문의나 불편사항 등을 수집해 관리하던 한섬 측은 하프백에 대한 소비자 의견을 접하게 됐다고 합니다. 가방에 연결된 스트랩이 쉽게 해진다는 의견을 수렴해 다른 소재로 대체하는 방안을 강구했고, 이미 구입한 고객들에게도 AS를 통해 보상키로 한 것이죠.
그렇다면 국내에 유통되는 해외 명품 브렌드의 서비스도 이 정도일까요? 직장인 손혜원(38)씨는 지난해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 200만원대 명품 브랜드 가방을 구입한 뒤 곤란하게 됐습니다. 한 두 번 들었을 뿐인데 손잡이 부분이 뒤틀린 듯 구겨진 겁니다. 매장으로 달려가 가방을 보여주니 웬일인지 별 말 없이 새 제품으로 바꿔주더랍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직원의 발언은 황당했습니다. “제품에 결함이 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는데, 매장으로 오신 분들에게만 교환해드리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하자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항의하는 소비자에게만 조용히 교환 처리해준다는 얘기였죠.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가격 면에서 20배 이상 차이가 나는, 10만원대 온라인 전용 제품보다 못한 서비스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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