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으로 승부하는 예능계에서 이른바 ‘성공’을 판가름하는 가장 냉정한 지표는 시청률 성적표다. 과거에 비해 시청률이 갖는 의미가 적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예능이 성적에 따라 레귤러 편성이나 시즌제 제작 여부 등을 결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시청률 성적표를 무색하게 만드는 예능 두 편이 연이어 예능 시장에 등장했다. KBS2 ‘으라차차 만수로’와 SBS ‘그랑블루’다. 비슷한 시기 출발을 알린 두 프로그램은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기존 예능들의 기조에서 벗어나 시청자들의 마음을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와 의미를 더한 ‘청정 예능’이다.
지난 21일 첫 방송을 시작한 ‘으라차차 만수로’(이하 ‘만수로’)는 최근 영국 축구 13부 리그 ‘첼시 로버스 FC’의 구단주가 된 김수로를 중심으로 이시영, 엑소 카이, 뉴이스트 백호, 박문성 등이 뭉쳐 선보이는 영국 축구구단 경영 예능이다.
앞서 ‘만수로’는 프로그램 기획 전 김수로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개인적으로 영국 축구 구단을 인수한 것을 계기로 기획, 제작된 예능으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실제로 방송 전 열렸던 제작발표회 당시 김수로는 “영국 축구의 열성 팬이었는데, 좋은 기회로 구단 인수를 하게 됐다”며 “구단주 계약 사인을 하는 날 배우가 된 것 만큼 좋았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 배우의 영국 축구 구단주 변신 소식에 화제성은 높았지만, ‘만수로’가 여타 예능과 달리 개인의 ‘꿈 실현’에서 출발했던 만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구단주 변신’이 단순히 일회성 예능 소재로 소비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모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양혁 PD는 “김수로 씨의 꿈, 이사진(출연진)들의 꿈, 선수들의 꿈, 나아가 시청자 분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며 “직업을 이야기하는 세태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은 건강한 예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진정성 어린 답변으로 우려를 불식시켰다.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이사진의 일원으로 프로그램에 합류한 박문성 해설위원의 한 마디였다. 박 해설위원은 “열심히 하는 선수들에게 ‘반드시 성공할 수 있게 해드리겠다’는 말은 못 드리겠더라”는 솔직한 심경을 전하며 “하지만 꿈을 위해서 조그마한 기회를 드리겠다는 말씀은 한 번 드렸던 것 같다. 그런 기회를 주신 김수로 구단주님게 감사드린다”는 말을 덧붙였다. 단순히 예능적 재미와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을 위해 수박 겉핥기식 ‘흙수저 구단의 성공신화’를 그려내는 것 보다 훨씬 진심이 느껴지는 태도에 ‘만수로’가 그려낼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현재 2회까지 방송된 ‘만수로’는 축구 구단 운영에 대한 다양한 정보부터 김수로가 인수한 13부 리그 ‘첼시 로버스 FC’의 강등 위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한데 버무려 ‘축알못’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신개념 예능을 완성했다. 여기에 구단주, 이사진들과 선수들 간의 관계가 점차 쌓여가며 ‘MSG’ 대신 ‘진심’으로 가슴을 울릴 스토리도 더해지고 있다. 출발은 개인의 꿈에서 시작했을지언정, 마지막에는 모두의 꿈을 향할 ‘만수로’의 묵직한 메시지에 기대가 모인다.
그런가 하면 SBS에서는 해양 생태계 복원을 위해 나섰다. 지난 28일 첫 선을 보인 ‘그랑블루’를 통해서다.
총 3부작의 파일럿 형태로 막을 올린 ‘그랑블루’는 박태환, 이종혁, 오스틴강, 최성원, 한석준, 안형섭이 필리핀 카모테스를 찾아 직접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수중 공원’을 건설, 수중 생태 복원을 위해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예능이다.
‘그랑블루’의 연출을 맡은 유경석 PD는 “바다의 극심한 오염으로 인해 해양 생태계가 파괴되고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움이 되고자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제작발표회 당시 세계 수영 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을 비롯해 출연진 모두가 이 같은 기획 의도에 공감해 출연을 결정했다고 전하며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감을 드러냈다.
이들이 촬영을 위해 진행한 수중 공원 건설은 스쿠버 다이빙 능력자 이종혁부터 ‘마린보이’ 박태환까지 총 6명의 장정들이 함께했음에도 결코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한 수중 공원에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큰 희열을 느꼈다”던 출연자들은 노동강도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아직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해야 할 바다가 많더라”고 책임감을 드러내며 레귤러 편성에 대한 의지를 전했다.
‘그랑블루’ 첫 방송 시청률은 1.3%를 기록했다. 이들의 포부와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결과다. 하지만 멤버들의 다양한 매력과 발전해 나가는 케미, 앞으로 펼쳐질 본격 ‘수중 공원 건설기’로 상승세를 그릴 가능성은 다분하다. 성적을 차치하더라도 이들이 시청자들에게 환기시키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진 의미만으로도 이미 그 가치는 충분하다.
최근 더욱 치열해지는 예능 경쟁 속에서 ‘으라차차 만수로’와 ‘그랑블루’의 출발은 어쩌면 미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은 ‘흥행작 따라잡기 식’ 기조가 만연한 천편일률적인 예능 시장에서 다양성 확장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일회성 웃음 제공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예능이 지향해야 할 발전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두 예능이 ‘창대한 끝’ 보다는 ‘끝까지 의미를 잃지 않는’ 예능으로 마무리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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