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사법농단 영향도 일부…법 불신 회복해야”

“아동 성폭행범을 감형한 판사를 파면해주세요.”
지난달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서울고법의 A부장판사를 파면해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미성년자 아동을 성폭행한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해도 부족한데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감형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폭행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했다”고 설명자료까지 냈지만, 불붙는 청원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청원 동의자는 급속도로 늘어 마감 12일을 앞둔 2일 기준, 16만명을 넘어섰다.
최근 들어 특정 판사를 파면해달라거나 처벌해달라는 등 사법부 관련 청원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1일에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 B판사를 파면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경찰관으로 인해 상해를 입은 유명 영어강사에게 국가가 일부 손해를 배상하도록 한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당한 공무 집행을 한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는 게 온당하냐는 주장이었다.

해당 청원은 국가 배상이 경찰관 개인 배상처럼 표현되는 등 사실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부분이 일부 포함됐다. 그러나 오해는 확산됐고 게시 하루 만에 3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2일에는 해당 청원 글을 본 다른 청원인이 “판사님과 원고와의 부적절한 커넥션이 있었던 게 아니냐”며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까지 올렸다.
또 검찰이 사법농단에 연루됐다고 비위 통보한 66명의 법관을 업무에서 배제해달라는 내용과 대법관들의 비위로 의심되는 행위에 대해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청원이 같은 날 연이어 게시되기도 했다.
판사 개개인을 향한 청원이 계속되면서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2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판결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더라도 이런 청원이 올라오는 상황이라 우려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영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지 못하고, 여론을 의식하면서 재판을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재판부의 독립적 판단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농단으로 인한 사법부 불신이 개별 판사를 향한 청원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민이 감정이입을 할 만한 사건이 미디어로 노출이 되고, 국민청원이라는 창구가 생기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면서도 “사법농단 사태까지 맞물린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한 교수는 “사법농단으로 인해 재판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사법 불신이 자리 잡으면서 불신이 불신을 야기하고,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이 됐다”며 “사법농단 재판이 계속되는 동안은 이런 경향이 계속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 불신이 신뢰로 넘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사법부의 독립성만 강조하지 않고, 공정성을 강조하며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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