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피(Groupie)’는 뮤지션의 성적 파트너가 된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다. 남성 스타와 여성 팬의 사이를 자극적으로 설명하는 데 주로 사용되지만, 각종 성폭력 고발이 줄을 잇는 한국사회에서는 이를 단순한 성적관계로 해석하기 어렵다.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자인 정지향 작가의 ‘베이비 그루피’는 홍대 밴드맨과 여고생의 관계를 다룬다. 2016년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고발하는 해시태그 중 하나였던 ‘#인디씬_내_성폭력’ 문제가 이야기의 주요 소재이기도 하다.
‘베이비 그루피’를 비롯해 지금 가장 첨예한 여성문제를 한꺼번에 담은 페미니즘 테마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이 나왔다. 2017년 출간돼 많은 여성의 공감을 이끌어냈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의 후속작이다. 조남주, 구병모, 최은영 등 국내 대표 여성작가들이 참여한 전작이 30~40대 여성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번에는 장류진, 정지향, 박민정 등 신진 작가진이 20~30대 여성의 목소리를 담았다.
표제작인 ‘새벽의 방문자들’은 지난해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직장인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낸 장류진 작가의 작품이다. 오피스텔로 이사한 뒤 새벽마다 초인종을 누르는 수상한 남자들에게 시달리는 30대 초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사회에 만연한 각종 성매매 행태를 꼬집는다.
참여 작가 중 유일한 남성인 김현 작가의 ‘유미의 기분’은 지난해 여자고등학교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스쿨 미투’를 다룬다.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친구가 (스쿨미투가 일었던) ○○여고 졸업생인데, 20년 전에도 학교는 똑같았다는 얘기를 하더라”며 “결국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젠더 폭력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고 소설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성적 대상화’ 되는 남성을 등장시켜 기존 여성과 남성의 위치를 전복시키는 ‘미러링’ 전략으로 쓰인 ‘누구세요?’는 88만원세대 대표 에세이스트 김현진 작가의 작품이다. 평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페미니즘 발언을 적극적으로 해온 김 작가는 “페미니즘이 아무리 득세해도 가부장제 타파는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 책이 그런 현실에 약간의 균열이라도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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