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충남 3대 우시장 열리던 서천 판교마을
시간은 상대적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고 되돌릴 수 없는 게 시간이라지만 ‘판교’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번쩍번쩍한 통유리 빌딩이 숲을 이루고 첨단 IT기업 종사자로 활력이 넘치는, 테크노밸리가 형성된 그 판교가 아니다. 널빤지를 깔아 놓은 ‘널다리’가 있었다는 유래는 같지만, 충남 서천 판교마을의 시간은 성남 판교와 정반대로 흐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경제 개발이 본격화된 1960~70년대 언저리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는 수식에 조금의 과장도 없다. 바스라질 듯 낡아 버린 골목을 걷는 걸음걸음이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이다.
◇충남 3대 우시장 서천 판교면
판교버스정류소 건물엔 따로 간판이 없다. 개량 기와지붕 처마 아래 담배 판매점 간판이 붙어 있고, 빛 바랜 미닫이 창문 앞에 낡은 의자 2개와 작은 평상이 놓여 있을 뿐이다. 내부로 들어가도 이곳이 정류소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다. 지금은 보기 힘든 회수권이 껌 통과 주전부리 과자 봉지 사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고, A4 용지에 비뚤비뚤하게 쓴 버스시간표는 벽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계산기 옆에 뒹굴고 있다. 행선지나 시간 표시도 주인만 알 수 있는 암호 같다. 이 건물이 얼마나 됐는지, 버스정류소는 언제부터 영업했는지 물었다. 주인 아주머니의 대답은 모호하지만 분명했다. “아유, 오래됐지.” 정확한 연도 대신 어느 해인가 큰 트럭이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 이 정류소를 덮치는 바람에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이 여럿 죽어 나가고, 건물 창문이 모두 부서져 새로 했다는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졌다. 언제였는지 되물었지만 “하여간 오래됐다”는 것만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렇다. 판교에서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찾는 건 힘들지 않다. 판교면 사무소에서 몇 발짝만 옮기면 너무 낡아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이 좁은 도로 양편에 산재해 있다. 판교중학교 입구 정미소 담벼락엔 마을의 내력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지붕도 붉은 페인트를 칠해 겉보기에 제법 산뜻하지만 처마와 벽면 사이로 보이는 나무 기둥의 부식까지 모두 가리지는 못한다.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 정미소다.
서천 판교면은 1980년대까지도 홍성ㆍ논산과 함께 충청남도의 3대 우시장이 섰던 곳이다. 새벽 4시부터 열리는 우시장을 보기 위해 서천은 물론 인근 보령과 부여 농민들까지 밤새 소를 끌고 판교장으로 몰렸다. 하루 수백 마리가 거래됐다니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규모다. 우시장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상가가 형성됐다. 새벽 이슬 맞으며 길을 달려온 이들이 허기를 채울 식당과 잠시나마 눈 붙일 여관방이 성업을 이뤘다. 덩달아 모시시장도 한산 못지않게 크게 열렸다.
당시 판교 시장의 주요 먹거리는 도토리묵이었다. 인근 야산에 참나무가 많았다. 도토리는 땔감으로 베어 낸 밑동에서 올라온 가지에 특히 많이 열렸다. 가을이면 어른이고 아이고 도토리 줍는 게 일이었다. 자연히 묵 무침을 주로 판매하는 식당이 많았고 묵 공장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읍내 뒤편을 흐르는 판교천은 묵을 쑤고 남은 도토리 껍질과 묵 지게미로 언제나 시커멨다. 이종림 부면장은 “그래도 물고기가 많았던 걸 보면 도토리가 물을 오염시키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지금은 판교농협을 비롯해 2곳만 묵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묵은 여전히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걸음걸음 오래된 시간 속으로
옛 우시장 초입의 2층 가옥은 드라마나 영화를 찍기 위해 일부러 만든 세트처럼 비현실적이다. 일제강점기에 판교 상권을 좌지우지한 일본인들이 사용했던 건물이다. 2층은 사방으로 창문이 나 있어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읍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오랜 세월에 기둥이 뒤틀린 미닫이 유리창에는 페인트로 ‘쌀’ ‘칠’ ‘사진관’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이질적인데 묘하게 어울린다. 싸전으로 시작해 20여년 전 ‘장미사진관’으로 역할을 마무리한 건물의 이력이 고스란히 남은 모습이다. 지금은 안채에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다.
우시장 부근은 이 집 말고도 식당이 여럿 있었는데, 대부분 여관의 역할도 겸했다고 한다. 장미사진관 2층도 판교 장날 모시를 팔러 온 상인과 장꾼들이 쪽 잠을 청하던 곳이었고, 도토리묵 무침을 팔던 식당의 안쪽 방에서는 우시장에서 목돈을 쥔 농민들이 막걸리 잔을 들이키며 투전 판을 벌이기도 했다.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래가 오가고 오락까지 즐기는 곳이었으니 아주 옛날로 치면 객주였고, 모양이 좀 빠지긴 하지만 요새로 치면 호텔이었던 셈이다. 장날마다 시끌벅적하던 우시장은 지금 골목 벽화로만 남아 있다. 화려하게 색칠하지 않고 만화처럼 간결하게 그려 아주 옛날도 아니고, 그렇다고 최근도 아닌 판교의 옛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옛 장미사진관 맞은편 건물은 아예 속살을 드러내며 허물어진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다. 조그만 충격에도 곧 깨질 것 같은 창문에 백숙, 통닭, 흑염소 등의 글자가 붙어 있는 걸 보면 식당이나 건강원으로 사용되었던 듯하다. 바로 옆 동일주조장도 3대에 걸쳐 인근 식당과 주민에게 막걸리를 공급했던 곳이지만, 지난 2000년 문을 닫았다. 콘크리트 벽면의 돋을새김 간판 아래 ‘TEL 45’라는 글자가 낯설고도 익숙하다. 집집마다 전화가 보급되기 전 교환원을 통하던 시절 전화는 곧 부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영업하고 있는 지한약방은 29번, 문 닫은 삼화정미소는 52번이었다. 삼화정미소는 오씨 성을 가진 주인이 운영해 ‘오방앗간’으로 부르기도 했다. 명절이면 못해도 100명이 줄을 섰던 유명한 방앗간이었다.
우시장 뒤편으로 돌아가면 옥산집과 판교철공소가 나온다. 옥산집은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인 최근까지 막걸리를 팔던 가게다. 빨간 슬레이트 지붕에 미닫이 창문이 단정한 판교철공소 역시 오래된 건물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철공소는 다행히 2대째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철공소에서 뒤로 돌면 판교극장이 우람하게 서 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지은 콘크리트 건물로 외관만 보면 판교에서 가장 웅장하고 이질적이다. 영화만 상영한 게 아니라 주민들의 문화 생활 공간으로 이용해 ‘공관’이라 불렀던 건물이다. 건물 입구의 1960~70년대 영화 포스터는 최근에 붙인 것이다. 정작 출입문 유리창에는 ‘봉술ㆍ쌍절곤ㆍ검도ㆍ지압술’ 등의 글자가 붙어 있다. 1990년대 호신술을 가르치는 종합무술도장으로 쓰던 흔적이다.
시장 골목을 벗어난 마을 어귀에 판교역이 있었다. 역 광장은 그대로인데 안타깝게도 역사(驛舍)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새 건물에 ‘판교특화음식촌’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지만 정작 특화된 음식이 없어 더 섭섭하다. 선로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말끔히 제거해 허전한데, 역전슈퍼ㆍ공영슈퍼ㆍ중앙슈퍼가 남아 있어 그나마 인파로 북적거렸을 옛 판교를 떠올리게 한다.
◇서천 판교 여행 정보
▦장항선 선로 개량으로 현재 판교역은 읍내에서 약 1km 떨어진 외곽에 있다. 서울 용산역에서 판교역까지 하루 8회 무궁화호 열차가 운행한다. 약 3시간이 걸리고 요금은 1만3,300원. ▦판교면 사무소(행정복지센터)에서 ‘시간이 멈춘 마을’ 스탬프 지도를 받아 판교극장, 옛 우시장, 일본식 가옥, 동일주조장, 고석주 선생 기념공원, 오방앗간에서 스탬프를 찍어 면사무소로 되돌아오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옛 판교역에서 이어진 도로변에 나름 ‘판교 맛집’이 몰려 있다. 삼성냉면, 수정냉면, 진미식당 등 냉면과 콩국수를 잘한다는 식당이 서넛 있고, 동생춘은 수타 자장면으로 이름난 중국식당이다. 1만원에 육회비빔밥과 육회냉면을 맛볼 수 있는 판교한우마을도 괜찮다.
서천=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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