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 규제 발표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사실상 일본에 빌미를 제공한 건 우리’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수출 강국이라는 명성에 취해 소재나 장비 등 기반 산업 육성을 소홀히 했다는 반성, 그리고 올해 초부터 감지되던 일본의 수출규제 조짐을 간과했기 때문에 일본이 이번처럼 강수를 둘 수 있었다는 비판이다.
1일 디스플레이 기업 관계자는 “사실 몇 년 전부터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완성품에서의 경쟁력과 별개로 소재나 장비 단계에서도 기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이를 모른 척하다 결국 무방비 상태에서 제대로 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특히나 핵심 소재 공급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본 쪽의 품질 등을 대신할 곳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부분 무관심해왔던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사전에 조금만 민감하게 움직였다면 대비도 가능했다는 의견도 있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일본이 이번 규제를 갑자기 내놓은 게 아니라 여러 차례 현지 언론 등을 통해 경고를 해왔지만 우리가 무시하고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면서 “정부는 물론이고 업계에서도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 역시 “일본 경제가 아무리 무너졌다 해도 일본은 기초원천을 꾸준히 잘해온 반면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의 양적 성장에 치중해온 탓에 기초원천 관련 제품들을 자체 개발하지 않고 싸게 수입해서 써왔다”며 “일본이 우리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건드린 건데 이번 기회에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등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 나가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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