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성격 테스트나 별자리 운명론을 신뢰하면서도 과학에 대한 미련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은 그런 설명이 방대한 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경험적ㆍ통계학적 진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날 그 별자리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이들은, 수천 년 인류 역사를 되짚어 따져보면 공통의 기질을 지녔고, 유사한 인생 역정을 거치더라는 설이다. 물론 그 통계의 기초자료는 아직 누구도 제시한 바 없다.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자신의 성격, 혹은 운명은 대체로 긍정적인 것들이다. 부정적인 면들도 대체로 자신을 미화하는 알리바이가 된다. 가령 당신이 가난한 이유는 더 가난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천성 때문이고, 출세를 못한 이유는 불의에 타협하지 못하는 정의감 때문이라는 식이다. 원하는 것만 보고 듣고 믿으며, 그래서 잘 속는 그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 또는 포러 효과(Forer Effect)라 부른다. 바넘은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쇼맨 폴 바넘(P.T. Barnum, 1810.7.5~1891.4.7)을, 포러는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Bertram Forer, 1914~2000)의 이름이다.
바넘은 코네티컷 주 의원과 브리지포트란 도시의 시장을 역임했지만,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라는 유명 서커스 설립자이자 미국의 원조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더 유명하다. 그의 서커스는 ‘피지의 인어’ ‘171세의 마녀’ 같은 이른바 ‘프리크 쇼(freak show)’로 명성을 날렸다. 모두 조작된 가짜였고, 그는 조작을 위해 고문이라고 할 만한 가혹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돈벌이 수단에는 사람뿐 아니라 ‘기괴한’ 동물도 다수 동원됐다. “세상에는 언제나 속는 자들이 있기 마련(There’s a sucker born every minute)”이란 그가 남겼다는 말은, 실제로 그가 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누구보다 그의 좌우명으로 어울리는 말이었다. 포러는 1948년 일군의 제자들을 상대로 성격 테스트 실험, 즉 다수의 성격 묘사 항목을 주고 자기에게 해당하는 만큼 점수를 부여하는 실험을 한 결과 대동소이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지니는 성격적 특성을 ‘다소’나 ‘때로는’ 같은 애매한 수사를 써서 제시한 결과였다.
하지만 별자리나 혈액형의 운명론에 취한 이들은, 세상에 별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다.
최윤필 선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