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판문점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3차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채택 없이 끝나며 구긴 정치적 위상 회복을 노렸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계산법을 바꾸라’고 몰아붙여도 미국의 입장 변화 기미가 없어 답답하던 차에 양국 정상의 전격 회동으로 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도 북한으로선 성과다.
‘이번 회담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고 북미가 일제히 부각한 건, 협상 재개를 위해선 하노이 ‘노딜’(No deal)로 손상된 김 위원장의 체면 회복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통해 밝히고, 여기에 북한이 화답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 자체가 김 위원장 외교력을 부각하기 위함이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자유의집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전날) 아침에 의향을 표시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정식으로 만날 것을 제안하신 사실을 오후 2시에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2차 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문 채택 없이 끝난 상황에서도 북미 정상이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미국과의 거래’에 대한 북한 내부의 불신과 반발을 누를 수 있는 장치로도 활용될 법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우리 각하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훌륭한 관계가 아니라면 이런 하루 만의 상봉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 입장에선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최고지도자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걸 대내외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문점 만남이 두 정상의 ‘케미스트리(궁합)’로 탄생한 것 역시 실무 협상에 거부감을 보여온 북한으로선 반길 법한 일이다. 하노이 노딜로 ‘톱다운(Top-down)’ 방식에 대한 불신이 특히 미국 내부에서 적잖이 제기돼온 상황에서, 문제 해결의 키는 두 정상이 쥐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실질적으로 손에 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란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단독회담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난 뒤 “대북제재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정치적) 상징성’만 챙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닌 북한이 이런 이벤트(판문점 만남)에 응한 것은 그만큼 (협상 재개가) 급하다는 방증”이라며 “향후 (미국에) 수세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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