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은에 희망한다면 언제든 방문하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하면서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혀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북미가 비핵화 실무 협상을 재개하기로 함에 따라 실무 협상에서 성과가 나오면 4차 북미 정상회담을 워싱턴에서 갖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워싱턴으로 초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백악관 초청 의사를 밝혔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함께 먼저 군사분계선 북측 땅을 밟았다가 다시 돌아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지금 그를 백악관으로 초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별다른 응답을 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회담이 종료된 후 기자들을 만나 “김 위원장에게 희망한다면 언제든 백악관을 방문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이 잘 진행되면 백악관으로 초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그는 “김 위원장이 호의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일이 잘 진행될 경우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는 ‘김 위원장을 워싱턴으로 초대할 것인지,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리조트로 초대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아마도 백악관에서 시작할 것이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은 것만큼 북미 관계 개선을 상징하는 역사적 행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북미 비핵화 협상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한 비핵화의 가시적 성과 없이 김 위원장을 초청하는 것이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김 위원장으로서도 제재 해제나 북미 관계 개선 등의 결과물 없이 워싱턴을 방문하기 어렵다. 실제 김 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한다면 그에 앞서 북한 항공기의 미국 영공 진입을 막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풀려야 하고, 미국 입장에서도 적국의 지도자에게 백악관 내부 등 많은 보안 사항을 공개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김 위원장의 방미가 성사돼도 항속거리가 짧은(제원상 9,200~1만㎞) 전용기 참매로는 미 본토까지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북미간 실무 협상이 성과를 내 김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이 성사되면 그 자체로 미국 내에서 엄청난 화제다. 대선 재선 레이스에 돌입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대북 외교 성과를 자신의 최대 외교 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은 북한 시장을 세계에 개방하는 전환기적 사건의 성격도 담길 수 있다. 중국을 개혁 개방으로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은 1979년 워싱턴을 방문해 대미 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며 시장 개방을 가속화했다.
다만 북미간 실무 협상이 성과를 낸다면 북미간에 4차 정상회담 개최지를 두고 평양과 워싱턴간 밀고 당기기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1차 정상회담 개최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북한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김 위원장이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하면서 평양 초청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판문점 회동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현지 상황이 매우 소란스러워서 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지만 김 위원장의 통역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절한 시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길 바란다. 나는 그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고 통역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전했다. 미국으로선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남북 경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기 때문에 답방 성격으로 김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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