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은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 끝에 성사됐다. 전날 오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측에 ‘돌발 제안’을 한 후 세 정상이 나란히 서 대화하기까지 불과 3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깜짝 회동’을 통해 전세계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적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미 정상이 남북 공동경비구역(JSA) 판문점에서 만나는 초유의 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29일 오전 7시 50분 올린 트윗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일인 이날 그는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회담을 포함해 아주 중요한 몇몇 회담을 가진 후 나는 일본을 떠나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으로 향할 것”이라며 “그곳에 있는 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것을 본다면, 나는 DMZ에서 그를 만나 손을 잡고 인사(say Hello)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 돌발 트윗으로 전세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29, 30일 방한과 DMZ 방문이 북미 대화를 재개하기에 좋은 계기로 주목 받긴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순방 직전인 26일(현지시간) “이번엔 그(김정은)와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기대감이 낮아진 상황이었다. 그러다 돌연 회동을 제안하면서 순식간에 3차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여부에 이목이 집중됐다.
상황은 같은 날 오후 1시 5분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명의 담화로 북측이 화답해오면서 더욱 빠르게 진전됐다. 최 제1부상은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DMZ 회동 제안은)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지만 우리는 이와 관련한 공식제기를 받지 못하였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대로 분단의 선에서 조미(북미) 수뇌상봉이 성사된다면 두 수뇌 분들의 친분관계를 더욱 깊이하고 양국관계 진전에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후 약 5시간 15분 만에 ‘미국이 회동을 공식 제안한다면 수용할 의사가 있다’는 화답을 북측이 보낸 셈이다.
북측 담화 직후부터 북미 양측은 회담 성사를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DMZ 방문은 일찍이 준비된 일정이었지만 판문점에서 세 정상이 만나려면 의전, 동선, 경호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은 우선 북측과 핫라인인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간 직통전화를 가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미국은 DMZ 회동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했고, 북측이 즉각 호응하면서 준비가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날 밤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의 만찬 직전 “북측에서 연락을 받았다. (내일 만남은)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하면서 회동 성사 분위기가 한층 달궈졌다.
이후 실무접촉은 대북 실무협상을 이끌어 온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이 담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둘은 이날 밤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가 불참했다. 당시 직접 판문점을 방문해 북측 인사와 실무 조율을 마무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침내 30일 오후 1시 10분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오늘 정전선언이 있은 후 66년 만에 판문점에서 미국과 북한이 만난다”고 회담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DMZ로 떠나기 불과 40여분 전이었다.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JSA에 들어선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3시 46분 군사분계선에 서서 북측 판문각에서 나온 김 위원장과 손을 마주 잡았다. 남북미 정상의 역사적 회동은 그로부터 5분 뒤 성사됐다.
제안이 이뤄진 지 32시간 만에 성사된 이번 남북미 정상 만남은 무엇보다 북미 대화 재개의 극적인 홍보를 노린 트럼프 대통령의 수가 적중한 결과라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단계부터 이번 회동을 기획했는지에 대해선 관측이 엇갈린다. 앞서 23일 김 위원장이 트럼프로부터 받은 친서에 대해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당시 이미 DMZ 회동이 논의됐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이날 미 정치전문 매체 더힐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일 인터뷰에서 ‘만약 김정은이 제안한다면 그곳(DMZ)에서 만나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점을 근거로 북미 간 사전 물밑 조율이 있었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미측 제안이 일찍 전해졌다 하더라도 막판까지 연막 작전에 성공해 ‘번개 회동’으로 연출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성공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회동은 정치 이벤트로 지지율 상승을 이루는 ‘컨벤션 효과’를 노린 트럼프 대통령의 신의 한 수“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회동 기대감을 낮춰 오히려 한반도 이슈 주목도를 단번에 높였다”고 분석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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