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깜짝’ DMZ 회동이 이뤄졌다. 양 정상의 ‘파격적 실리주의’가 판문점 만남이라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즉흥적 퍼포먼스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북미 협상의 일대 전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내용적으로도 성공적이다. 잠시 ‘악수’를 하며 친분을 과시하는 퍼포먼스 이상으로, 53분간 단독 회담을 통해 북미 협상 재개의 구체성을 확보했다.
우선 북미 정상 간 신뢰를 다시 한 번 과시한 점은 큰 성과다. 양측 모두 북미협상에 대한 국내외적 회의감을 불식시키는 일정한 효과를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레이스에서 대북 정책의 성과를 다시 중요한 소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북한도 ‘하노이 노딜’ 이후 내부적으로 조성됐을 피로감, 그리고 비핵화 선택에 대한 내부적 회의감을 정상간 신뢰 과시를 통해 불식시키며 협상 재개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둘째, 북미 대화 재개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향후 불확실성을 일정 부분 걷어냈다. 특히 2~3주 내에 북미 실무협상 재개라는 구체적 일정을 합의했다. 또 포괄적 합의를 진행한다는 데 양 정상이 공감했다. 북미는 향후 수 주간의 사전준비 이후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협상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서로의 일방적 주장을 내려놓고 건설적 해법을 강구하자는 김 위원장의 입장, 북미 양측 모두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최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발언을 교차시켜보면 하노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양측의 의지가 읽힌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의 ‘워싱턴 초청’과 김 위원장의 긍정적 화답도 주목할 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은 북미 협상 성공에 대한 기대, 가능성, 믿음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나오기 힘든 발언이다. 협상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신이 있다면, 쉽게 제안하기 힘든 ‘초청’이다. 김 위원장의 긍정적 화답 역시 북미 협상 성공에 대한 기대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회동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이 실패하지 않았으며, 이번 회동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양측이 하노이 노딜의 충격을 딛고 협상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위상이 새롭게 재인식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 회동의 판만 만들고 한발 뒤로 물러났다. 물론 북미 정상의 의지로 마련된 자리였지만, 한미정상회담이란 기회를 활용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일관된 대화 재개와 평화 의지를 피력했던 문 대통령의 노력은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 최근 북한의 남측에 대한 공세, 한국 역할에 대한 회의론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북미 정상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리는 조용한 중재자의 모습을 보인 부분은 인상적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 판문점 회동이 문 대통령 덕분이라고 강조하며 한국의 중재자 위상에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은 최근 6대 통신사 인터뷰를 통해 영변 폐기를 완전한 비핵화의 비가역 돌입 지점으로 삼고 대북 제재 해제도 이 기점으로 이뤄지는 안을 제시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직접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회담 실패와 북미 교착의 쟁점을 풀기 위한 한국의 몇 가지 묘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비가역적 돌입 지점을 남북미가 정치적으로 합의함으로써 일정한 기준점을 제시하는 것은 북미 소통의 가장 기초적 작업이 될 것이다.
북미는 7월 중 실무협상을 재개하며 상당히 빠른 진전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포괄적 비핵화와 포괄적 안전보장의 교환, 그리고 첫 단계 실행 조치로 영변 폐기에 합의하는 것이다. 북한도 연말 시한의 부담을 덜기 위해 9~10월 북한 최대 정치 행사 전에 ‘대타결’을 모색할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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