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 2년을 맞았다. 내각에 여성 장관을 30% 임명했고, 헌법재판소의 여성재판관도 30%가 넘었다. 교육부, 문화체육부 등 8개 부처에 신설된 양성평등 정책 전담 부서에서는 해당 영역에 성희롱ᆞ성폭력 근절과 정책의 양성평등 관점 반영 및 성차별 개선 업무를 담당한다. 큰 변화다. 그 무엇보다 큰 변화는 2018년 한국사회를 흔든 미투에 응답한 젠더폭력 방지 정책의 진전이다.
문재인 정부는 ‘젠더폭력 방지 국가책임 강화를 통한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이전 정부에서 성폭력,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범죄로부터 안전’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다. 성폭력, 가정폭력을 범죄로 접근해 ‘악’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성폭력, 가정폭력 등이 발생하는 원인, 즉 불평등한 성별 관계에 주목한 것이다. 성별 관계에 기반한 폭력 방지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할 것을 천명하고 새롭게 부각된 스토킹, 온라인 성범죄 등에 주목한 점은 현장에 기반 한 진일보한 접근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국정 철학과 미투 운동이 만나, 성희롱ᆞ성폭력 등 젠더폭력 방지 체계 구축에서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의 실질화 등 전방위적 성과를 이끌어냈다.
먼저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은 여성폭력 방지 정책을 종합적ᆞ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기반 마련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법 제정 과정에서 여성폭력에 대한 정의가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 ‘성별에 기반한 여성폭력’으로 수정ᆞ통과되어 젠더 갈등의 양상으로 비화되었고, 여성계로부터 입법 취지가 훼손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법안의 취지가 훼손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개정 논의가 본격화하길 기대한다.
스쿨 미투의 사각지대로 불리웠던 사립학교 교원에 대한 합리적 처벌도 가능해졌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관할청의 해임 또는 징계 요구에 따른 임용권자 징계 의결 요구 등을 의무화했고, 사립학교의 교원징계위원회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징계 및 감경 기준 등에 따라 징계 의결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권력형 성적 침해에 대한 법정형을 상향해 조직 또는 직장 내에서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 범죄를 엄단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됐다. 성폭력처벌법을 개정해 불법촬영 행위, 불법촬영물 유포 행위, 동의 하에 촬영했으나 이후 촬영대상의 의사에 반하여 유포한 행위를 모두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법정형이 상향됐다. 불법 촬영물을 영리 목적으로 유포할 경우 벌금형 없이 7년 이하 징역형으로만 처벌하게 됐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불법 촬영물 삭제 지원 및 구상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성폭력방지법을 개정해 피해자 지원을 보다 두텁게 했다. 그 밖에도 많은 관련 법 제도에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미투와 그 대응에 대한 사회적 피로감이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고, 정부에서 젠더폭력 방지 정책을 넘어 성평등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피로감은 우리 사회가 성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젠더에 기반한 폭력 피해자의 압도적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이 문제가 성차별적 구조의 변화 없이는 그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권력의 성별 비대칭성과 성별 임금격차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성차별적 구조는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 여성의 성을 소비하는 남성 중심 문화 등은 극복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미투 운동이 가져온 정책적 성과를 이제는 성평등 정책이라는 큰 틀로 확장하고, 성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비전과 노력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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