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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친구와 우정 여행 “우리 참 열심히 살았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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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친구와 우정 여행 “우리 참 열심히 살았다, 그치?”

입력
2019.06.2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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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친구’와 늦잠, 마사지, 아열대 과일 즐기며 만끽한 라오스 여행기

라오스 국경에서 27년지기 친구인 김복순(왼쪽) 한영인테리어 대표와 문정숙 아마존가구 대표가 ‘인생샷’을 찍기 위해 자리에서 힘껏 뛰어 포즈를 취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라오스 국경에서 27년지기 친구인 김복순(왼쪽) 한영인테리어 대표와 문정숙 아마존가구 대표가 ‘인생샷’을 찍기 위해 자리에서 힘껏 뛰어 포즈를 취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아침마다 방문했던 시장 한켠의 미용실. 우리나라 돈 1,500원이면 30분간 두피마사지와 함께 머리를 감겨준다. 아침마다 단골코스였다
아침마다 방문했던 시장 한켠의 미용실. 우리나라 돈 1,500원이면 30분간 두피마사지와 함께 머리를 감겨준다. 아침마다 단골코스였다
매콩강 인근 마사지 가게를 방문하기 전 점심 대신 두리안을 먹었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싱싱한 맛과 입에서 살살 녹는 느낌에 4개씩은 거뜬히 먹었다.
매콩강 인근 마사지 가게를 방문하기 전 점심 대신 두리안을 먹었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싱싱한 맛과 입에서 살살 녹는 느낌에 4개씩은 거뜬히 먹었다.

2년 전, 27년 지기 정숙씨를 잃을 뻔했다. 몸무게가 갑자기 20kg나 빠져서 병원을 방문했더니 편도암이라고 했다. 정숙씨는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 치료에 들어갔다. 꼬박 1년을 몸을 회복시키는 데 전념했다.

암으로 병상에 누웠는데도 “이상하게 행복하더라”고 했다. 친구는 남편이 IMF로 직장을 그만둔 후 사업(가구유통업)을 시작했다. 그 뒤로 한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태어나 처음 마음껏 쉬는 휴가를 가진 거라고 했다. 사실은 그것 때문에 우리 사이의 우정이 단단해진 거였다. 나도 젊은 시절부터 인테리어업에 뛰어들었다. 피 튀기는 사업의 현장에서 여장부로 살아가면서 생긴 서로의 생채기를 보듬어주면서 27년 우정을 이어왔다.

지난 6월, 라오스로 여행을 떠났다. 친구가 아픈 이후로 여행의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다. ‘쉼’. 사업이 체질로 굳어져서 DGB금융그룹이 만든 라오이싱 사무실과 코트라 무역관을 방문했지만, 그 외에는 ‘툭툭이’를 타고 다니면서 라오스의 바람을 맛보고 쉬는 게 전부였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늦도록 잠을 잤다. 습관 때문에 새벽에 잠이 깼지만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새들이 미열처럼 남은 졸음과 사위어가는 어둠을 쪼아대도록 버려둔 채 여유를 즐겼다. 침대에 누워 즐기는 아침 시간이라니! 일상에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그 선물 같은 시간에 문득 정숙씨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다리를 놓아준 것은 거래하던 은행의 직원이었다. 그는 “김 대표와 나이도 같고 성격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서 일하는 곳을 알려줬다. 나는 귀한 인연이라는 직감이 들어 작은 꽃다발을 준비했다. 은행직원은 정숙씨의 남편이었고, 그의 예감대로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됐다.

느지막이 일어나 머리를 감으러 쇼핑센터로 갔다. 우리 돈 1,500원 남짓이면 30분 동안 머리를 감겨주고 두피 마사지까지 해준다. 근처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과일시장으로 직행, 두리안, 망고 같은 제철 과일을 맛봤다.

과일이 한창이어서 뜻밖의 체험을 하나 했다. 두리안 하면 그 특유의 냄새를 떠올리지만 과일시장에서 산 싱싱한 두리안은 특유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내 머리에 각인된 구릿한 냄새는 냉장고에 몇 시간쯤 넣어둔 후에야 폴폴 풍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두리안의 악취는 철이 지났거나 과육을 밖으로 꺼낸 뒤 방치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사태였던 것이다.

싱싱한 두리안으로 배를 채운 후 마시지샵으로 향했다. 현지에서 오래 산 교민의 소개를 받아 간 마사지샵이었다. A급이라고는 못하겠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는 무척 높았다. 가장 마사지를 잘하는 친구와 함께 짝을 맺고 4일 내내 같은 사람에게 마사지를 받았다.

마시지 중에 어쩌다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들은 내 나이를 30대 중후반쯤으로 봤다. 내가 나이를 알려줬더니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는 시늉을 했다. 과장된 몸짓이었지만 정말 놀라는 눈치였다. 앞으로도 조명이 어둑한 마시지샵을 애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을 다 풀어주는 마사지샵이었다.

“우리는 바쁜 게 체질인 모양이다, 그치?”

사나흘쯤 흘렀을 때, 정숙씨가 그렇게 말했다. 맞다. 쌀국수와 찐 밥, 파파야 샐러드도 입에 맞고 마사지도 좋았지만 며칠 지나자 슬슬 일에 대한 욕구가 일었다. 돌아보기도 싫던 일상이 다시 그리워지는 건 여행이 제 몫을 다해줬다는 증거다.

그런데, 막상 내일부터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월요병처럼 마음 한켠에 슬며시 뜨악한 기분이 스몄다. 이럴 땐 내 마음의 언덕, 정숙씨가 필요하다. 남자 천지인 사업판에 뛰어들어 갑질에, 진상에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늘 또 다른 나처럼 곁에서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은 친구가 있어 여러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지친 마음을 맡길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자이자 든든한 전우다.

당신은 사업가로서 행복했나요?

누가 그렇게 묻는다면 한 템포를 쉬어야 대답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No’는 아니다. 친구가 있었으니까. 목이 마른 뒤에야 시원한 물맛을 알고 폭염을 겪고 나서야 그늘의 고마움을 안다. 진짜 단맛은 쓴맛을 모르고는 알 수 없다고 했던가. 겪을 때는 밉기만 하던 일상들이 한 번 돌아보니 애증이고, 두 번 돌아보니 그리운 것들로 그득한 이유일 것이다.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정숙씨와의 끈끈한 우정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 귀한 인연을 어디에 견줄 수 있을까.

“저거 봐라. 야시 같다.”

마시지샵에서 나오면서 정숙씨가 하늘을 가리켰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망고 과육처럼 노릿한 노을이었다. 나도 모르게 감탄을 쏟았다. 비행기에 몸을 실을 일만 남겨두고 있다는 걸 아는지, 라오스가 여우처럼 저렇게 예쁜 빛으로 유혹한다.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아지는 것, 사업이 그랬고, 사람이 그랬다. 잡힐 듯 잡히지 않다가 어느새 손안에 들어와 있던, 슬프고 노엽게 만들다가도 함박웃음을 짓게 하던 세상사. 세상이 부리는 여우 짓에 속아 지금껏 버텨온 건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마음속으로 라오스에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래, 일상에 지치면 다시 다니러 올게. 요 야시 같은 라오스야!’

김복순 사업가

27년만에 친구와 우정여행을 떠난 문정숙, 김복순씨. 라오스 시간 저녁 11시에 왓따이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반긴 건 후덥지근하고 묘한 향기였다.
27년만에 친구와 우정여행을 떠난 문정숙, 김복순씨. 라오스 시간 저녁 11시에 왓따이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반긴 건 후덥지근하고 묘한 향기였다.
공항에서 내려서 먹는 첫 바비큐. 성인 남성의 주먹보다 훨씬 큰 크기였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한 덩이에 600원 정도를 받았다.
공항에서 내려서 먹는 첫 바비큐. 성인 남성의 주먹보다 훨씬 큰 크기였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한 덩이에 600원 정도를 받았다.
태국과 마주보는 국경인 메콩강 앞 강변도로. 뒤쪽으로 라오스의 민족영웅 짜우아누웡 동상이 보인다. 짜우아누웡은 라오스 역사상 드물게 태국 정벌에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동상의 기단을 한국이 쌓았다. 강변도로 역시 2007년 한국이 원조한 메콩강 정비사업의 성과다.
태국과 마주보는 국경인 메콩강 앞 강변도로. 뒤쪽으로 라오스의 민족영웅 짜우아누웡 동상이 보인다. 짜우아누웡은 라오스 역사상 드물게 태국 정벌에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동상의 기단을 한국이 쌓았다. 강변도로 역시 2007년 한국이 원조한 메콩강 정비사업의 성과다.
태국과 마주보는 국경인 매콩강 둔턱. 소녀로 돌아간 느낌에 익살스런 포즈를 취했다.
태국과 마주보는 국경인 매콩강 둔턱. 소녀로 돌아간 느낌에 익살스런 포즈를 취했다.
라오스에서 가장 큰 시장 한켠에서 파는 두리안. 매일 아침 찾을 때마다 방금 따온 싱싱한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즉석에서 두리안을 손질해주는 상인. 라오스 여성들의 평균 키보다 10센치는 크고 미소가 기품있어서 방문할 때마다 “미스라오스 출신 아닐까” 하는 말을 주고받았다.
라오스에서 가장 큰 시장 한켠에서 파는 두리안. 매일 아침 찾을 때마다 방금 따온 싱싱한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즉석에서 두리안을 손질해주는 상인. 라오스 여성들의 평균 키보다 10센치는 크고 미소가 기품있어서 방문할 때마다 “미스라오스 출신 아닐까” 하는 말을 주고받았다.
아침시장에서 산 갓 따온 두리안. 냄새가 고약해서 먹기 역겹다는 알려져 있지만 싱싱한 과육은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크림이 입안에 퍼지는 느낌이었다.
아침시장에서 산 갓 따온 두리안. 냄새가 고약해서 먹기 역겹다는 알려져 있지만 싱싱한 과육은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크림이 입안에 퍼지는 느낌이었다.
라오스 최초의 야구장이 건설된 부지도 방문했다. 김연석(오른쪽에서 두번째) DGB 라오리싱 법인장도 함께했다. 야구장은 라오스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한 땅에 DGB금융그룹이 3억여원을 지원해 첫 삽을 떴다. 사진을 촬영한 다음 날(6월3일) 공사가 시작됐다. 재정 상황이 녹록치 않아 라오스국가야구대표팀 측은 “헐크파운데이션으로 기부를 받아 외벽에 기부단체의 이름을 명기한 동판을 부착하겠다”고 밝혔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kilbo.com
라오스 최초의 야구장이 건설된 부지도 방문했다. 김연석(오른쪽에서 두번째) DGB 라오리싱 법인장도 함께했다. 야구장은 라오스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한 땅에 DGB금융그룹이 3억여원을 지원해 첫 삽을 떴다. 사진을 촬영한 다음 날(6월3일) 공사가 시작됐다. 재정 상황이 녹록치 않아 라오스국가야구대표팀 측은 “헐크파운데이션으로 기부를 받아 외벽에 기부단체의 이름을 명기한 동판을 부착하겠다”고 밝혔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kilbo.com
라오스 대중교통 수단인 '툭툭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바람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덕분에 달리는 내내 라오스의 독특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공기 중에 라오스의 국화인 독참파 향기가 은은히 배어 있는 느낌이다.
라오스 대중교통 수단인 '툭툭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바람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덕분에 달리는 내내 라오스의 독특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공기 중에 라오스의 국화인 독참파 향기가 은은히 배어 있는 느낌이다.
김연석(가운데) DGB라오이싱 법인장과 함께 라오스 DGB법인을 찾아 기념촬영을 했다.
김연석(가운데) DGB라오이싱 법인장과 함께 라오스 DGB법인을 찾아 기념촬영을 했다.
라오스 명물인 독립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배경이 너무 잘나온 나머지 지인들이 합성이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라오스 명물인 독립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배경이 너무 잘나온 나머지 지인들이 합성이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라오스 독립문 꼭대기에 올라가서 한 컷. 라오스 시내를 다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 인상깊었다.
라오스 독립문 꼭대기에 올라가서 한 컷. 라오스 시내를 다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 인상깊었다.
매콩강에서 포즈를 취한 문정숙씨.
매콩강에서 포즈를 취한 문정숙씨.
매콩강에서 태국을 바라보며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복순씨.
매콩강에서 태국을 바라보며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복순씨.
라오스의 푸짐한 점심식사. 우리나라 돈으로 1만5,000원이면 갈비구이와 쌀국수, 야채 등 성인 4인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라오스의 푸짐한 점심식사. 우리나라 돈으로 1만5,000원이면 갈비구이와 쌀국수, 야채 등 성인 4인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라오스 관광지인 '탓루앙'에서 27년지기 친구인 정숙씨와 복순씨가 두 팔과 다리를 벌리며 힘차게 뛰어 사진을 찍었다.
라오스 관광지인 '탓루앙'에서 27년지기 친구인 정숙씨와 복순씨가 두 팔과 다리를 벌리며 힘차게 뛰어 사진을 찍었다.
탓루앙 옆에서 '방생'이라고 외치는 상인에게 산 방생전용 새. 몇 시간 후 다시 판매자에게 돌아가는 것을 알면서도 잠시나마 자유를 누리게 해주려고 구매했다.
탓루앙 옆에서 '방생'이라고 외치는 상인에게 산 방생전용 새. 몇 시간 후 다시 판매자에게 돌아가는 것을 알면서도 잠시나마 자유를 누리게 해주려고 구매했다.
5일간 묵었던 숙소 앞에서. 현관에 놓은 테이블은 아침 명상 명소다. 길거리를 지나는 트랜스젠더들이 추파를 던지는 것만 빼면 더 없이 평온한 공간이었다.
5일간 묵었던 숙소 앞에서. 현관에 놓은 테이블은 아침 명상 명소다. 길거리를 지나는 트랜스젠더들이 추파를 던지는 것만 빼면 더 없이 평온한 공간이었다.
귀국하던 날 오후에 만난 라오스의 노을. 장현의 ‘미련’을 떠올리게 만든 풍경이었다. 노을을 보면서 나지막이 “일상에 지치면 다시 올게. 이 여우 같은 라오스야!” 하고 읊조렸다.
귀국하던 날 오후에 만난 라오스의 노을. 장현의 ‘미련’을 떠올리게 만든 풍경이었다. 노을을 보면서 나지막이 “일상에 지치면 다시 올게. 이 여우 같은 라오스야!” 하고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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