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과학기술 투자와 인력 부문에서 전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과학기술강국이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 6위 제조업강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역량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같은 분야에서는 아직 미흡한 게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 해답을 듣기 위해 마창환(59)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이하 산기협) 부회장을 6월 2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산기협에서 만났다. 마 부회장은 국무조정실 경제총괄과장, 기획재정부 FTA기획총괄과장, 미래창조과학부 심의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친 이 분야 전문가다.
마 부회장은 먼저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지금까지의 혁신전략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진단했다. 패스토팔로워 (Fast Followerㆍ빠른 추격자)의 성공에 안주해 단기 성과 중심의 안정적인 연구개발(R&D)에 치중한 결과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이 지연되고,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산업구조 변화에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기협이 지난해 1,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R&D 자원(인력, 자금) 중 세계 수준의 기술 및 제품 개발에 투입되는 비중은 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을 통한 신시장 창출이나 글로벌 챔피언을 지향하기보다 현재 사업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때문에 마 부회장은 “익숙한 성공방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혁신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패스토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안전지향적 R&D에서 도전적 R&D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글로벌 톱(Top)을 목표로 장기적으로 모험적인 R&D에 과감히 투자하는, 이른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High Risk, High Return’(고위험 고수익)의 R&D에 나설 때”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마 부회장은 정부 지원정책, 기업 자체의 R&D 역량 강화, R&D 투자의 효율성 제고 등을 주문했다. 우선 정부 지원정책은 기업의 혁신 역량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마 부회장의 시각이다. 기업의 R&D 실태 파악을 위해 전체 기업들의 R&D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준 지표를 만들고, ‘R&D 역량 MAP’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이를 활용해 정부는 기업들의 역량 분포와 기업들이 원하는 것을 고려해 지원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기업들도 자신의 역량에 맞는 R&D 계획을 수립하는 게 좀더 수월해진다.
동시에 기업의 R&D 기획 역량을 높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마 부회장은 “중소기업의 경우 정보와 자원의 한계로 글로벌 시장이나 기술 동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기술개발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허와 데이터에 기반해 R&D 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인프라를 지원하면 기업들의 R&D 효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R&D 투자에 대해서는 효율성과 성과 측면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마 부회장은 보고 있다. 기업들의 R&D 투자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 2017년 기준 약 63조원이었다. 정부 공공부문 투자의 3배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의 R&D 정책은 국가 예산(20조원 규모)을 집행하는 쪽에 주로 방향이 맞춰져 있고, 민간의 R&D 투자 확대를 유인하는 정책은 조세지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기업의 R&D 성패와 성과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도 부족하다.
마 부회장은 아울러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파괴적 혁신을 이루려면 과거의 폐쇄적인 R&D에서 벗어나 기술혁신 주체들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강조한 개방형 혁신 활동이 있어야 한다”면서 “혁신클러스터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마 부회장은 “과거에는 클러스터에 지리적인 한계가 있었으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고도의 정보화에 기반해 지역을 초월한 개념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산학연, 다른 업종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보ㆍ기술ㆍ인력 교류가 활발해야 효율성이 극대화하고, 융합 활동을 통해 주목 받을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는 견해다. 산기협의 클러스터 지원사업도 이 연장선 상에서 추진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 부회장은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서 좀더 과감한 지원과 규제 개선이 이어져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예를 들어 신성장ㆍ원천기술 R&D에 대한 세제지원 적용 범위 확대와 R&D 분야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시간 적용 예외 인정,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하는 세제 개편 등이 대표적이다.
마 부회장은 “R&D 인력들은 항상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어 ‘하루 몇 시간, 일주일에 몇 시간’으로 근무시간을 딱 자르기 어렵다. 개발할 때 좀더 일하고 장기간 휴가를 가는 게 효율적일 수도 있는데, 현 정책에서는 이런 유연성을 추구하기 어렵다”면서 “현장에서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