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초안에 미국이 반대해 온 ‘보호주의 대항’ 문구 안 쓸 듯
각국 정상 등 19명과 회담 계획, 문 대통령과는 “일정 촉박” 핑계만
28일 개막한 일본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 간엔 어색함이 흘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오전 G20 의장국 정상으로서 참가국 대표를 영접하며 여섯 번째로 입장한 문재인 대통령과 조우했다. 그러나 두 정상은 8초 정도 악수하며 미소를 지었을 뿐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의례적인 인사에 지나지 않았다.
두 정상을 수행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장관이 이날 G20 외교장관 만찬 뒤 별도로 만났지만, 이마저도 짧은 회동에 그쳤다.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경색된 양국관계를 고려하면 당연한 풍경일 수 있다. 그러나 G20 정상회의는 불편한 관계인 양국 정상이 자연스럽게 만나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아베 총리는 G20 기간 주요 정상들과 양자회담을 통해 지도자 이미지 부각에 주력하면서도 정작 머리를 맞대야 할 문 대통령과의 회담은 외면한 것이다. 두 정상이 회의장이나 만찬장에서 15분 정도의 약식회담을 하거나 서서 대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29일 폐막까지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아베 총리는 G20 정상회의를 전후해 최소 19명의 회원국ㆍ초청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과의 양자회담을 계획했다. 이번 회의에 37명의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이 참석한 것을 감안하면 참가자 절반 이상과 양자회담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간 한국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를 타진할 때마다 촉박한 일정을 명분으로 곤란하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사실상 일본이 요구하는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중재위원회 수용을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총리관저 주변에선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면 문 대통령과 회담하지 않는 게 낫다”는 의견이 연일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는 아베 총리가 지향하는 국제사회 지도자로서의 위상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그는 전날 “국제사회에 대립이 강조되지만 일본이 의장국으로서 의견 차이보다는 일치점과 공통점을 찾아내고 싶다”고 의장국 정상으로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G20 정상회의는 아베 총리가 국제사회의 지도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평가 받는 시험대다. ‘자국 우선주의’로 G20이라는 다자주의 틀을 흔들고 있는 미국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가 관건이지만, 일본이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G20 정상회의 폐막 시 발표될 공동성명 초안에는 ‘보호주의에 대항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열린 G20 무역ㆍ디지털 경제장관회의 등에서 제기된 미국의 반발을 반영한 탓이다. 이에 일본은 ‘자유무역 촉진’이라는 표현으로 미국과 다른 회원국의 이해를 절충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본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서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한 파리 기후협정을 탈퇴한 미국을 배려하고 있다. 올해 공동성명에는 ‘지구온난화’와 ‘탈(脫) 탄소’ 등의 표현이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대처하겠다”고 한 것에서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파리협정을 언급하지 않으면 서명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반발하는 가운데 다른 회원국들도 이의 없이 수용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오사카=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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