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시도되는 기본소득제 실험, 여론은?
서울시 청년수당, 경기도의 청년배당의 도입, 전남 해남군의 농어민 기본소득제 준비가 본격화되면서 기본소득제의 아이디어가 현실적인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보편성) 고용 및 소득 여부와 상관 없이(무조건성) 일정액의 소득을 동일하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는 대표적인 보편복지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본소득제의 아이디어는 △소득양극화와 불평등 완화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으로 인한 기술실업 대책 △복잡한 절차와 행정비용을 초래하는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 △공유재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배분 △장시간 노동의 축소와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생태친화적 삶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반면 기본소득제에 대한 반론은 △빈부간의 격차 해소 효과에 대한 회의 △막대한 재정부담 △증세로 인한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 △불로소득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
본보가 지난 2월23일자 ‘여론 속의 여론’(기본소득 낯설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 63%)을 통해 보도한 1차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 보고서 결과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인식의 수준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이번에는 ‘LAB2050(대표 이원재)’과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연구팀’이 지난달 17~20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웹 서베이를 토대로 기본소득제의 기대효과와 우려요인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기본소득제 찬성 57%, 청년 학생 블루칼라 진보층이 여론 주도
알려진 것처럼 기본소득제에 대한 인식은 응답자의 인지도와 질문 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번 조사에서는 “기본소득제는 정부가 모든 국민의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하기 위해 근로 여부, 소득 및 재산 수준과 상관없이 매달 정기적으로 가구 단위가 아닌 각 개인에게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라는 지시문을 주고 찬반을 물었다. 조사한 결과를 보면 찬성 여론은 57%, 반대가 43%로 나타났다. 세대별 찬성 여론은 30대 64%, 40대 61%, 20대 60% 순으로 높게 나타났고, 50대와 60대에서는 각각 54%, 52%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직업별로 보면 학생(64%), 생산/기능/노무직(64%), 판매/영업/서비스직(62%)이 높았고, 사무직(57%) 자영업(57%) 무직/퇴직자(57%) 주부(52%)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무엇보다 이념 성향별 차이가 뚜렷하다. 진보층에서 64%가 동의하며 기본소득제 여론을 주도하고 중도층에서도 58%로 찬성여론이 다수지만, 보수층에서는 오히려 반대한다는 비율이 55%로 과반을 넘었다.
기대효과에 대한 찬반 쏠림은 없어
기본소득제에 거는 기대는 무엇일까. 전체적으로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해서는 찬성여론이 우세한 것에 비해 기본소득제가 가져올 기대효과에 대해서는 뚜렷한 찬반 쏠림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의 도입 취지 중 ‘인공지능/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근로소득이 감소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54%로 가장 높았다. ‘현행 복지제도의 복잡한 절차와 자격조사를 단순화하여 행정비용을 줄이고 행정조직을 축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53%였다. ‘장시간 노동과 과잉생산 줄이고,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생태친화적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효과에 대해서는 51%, ‘환경, 토지, 지하자원, 빅데이터 등 공유재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를 모든 시민에게 배분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50%가 동의했다.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불평등 완화 효과’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비율이 46%로 상대적으로 가장 낮았다. 보편복지가 부자에게도 혜택을 주게 되어 빈부격차를 좁히기 어렵고 재정압박을 가중시킨다는 우려가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기본소득제의 정책 효과 각각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아직 부족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론 기반: 보편복지 비전에 대한 공감과 증세 부담 의지
그렇다면 기본소득제에 대한 찬성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시민들의 복지여론 지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 시민들의 복지인식 유형은 크게 ‘복지정책의 비전’과 그 실현수단으로서의 ‘복지증세’에 대한 태도를 통해 유형화 해볼 수 있다. 이번 조사를 보면 ‘향후 우리나라 복지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서 어려운 계층을 지원하는 ‘선별적 복지’ 보다 모든 계층을 지원하는 ‘보편적 복지’를 보다 더 선호하고 있다. ‘보편복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비율이 58%인 반면 ‘선별복지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비율이 42%였다. 작년 2월 조사에 따르면 현 시점의 복지정책으로는 보편복지를 선호하는 입장(50%)과 선별복지를 선호하는 입장(47%)이 팽팽했던 것과 차이가 있다.
한국복지가 나아가야 할 장기비전으로서 보편복지를 희망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장 보편복지를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보편복지 시 증세 우려가 작동한 결과로도 해석된다. ‘복지 예산을 늘리기 위해 세금을 더 걷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은 63%인 반면, ‘더 걷어야 한다’는 입장’은 37%‘에 그쳤다.
보편복지 찬성/증세 반대하면 기본소득제 지지강도 약화
두 질문에 대한 응답을 교차해 유형화하면 ①보편복지 선호/증세 찬성 ②보편복지 선호/증세 반대 ③선별복지 선호/증세 찬성 ④선별복지 선호/증세 반대 등 네 유형으로 구분 가능하다. 개별 유형으로 보면 전통적인 진보진영의 입장(보편복지/증세찬성 26%)이나 전통적인 보수적 입장(선별복지/증세반대 30%)이 팽팽하지만 ‘보편복지’의 비전에 공감하지만 당장의 ‘증세에 반대’하는 현실주의적 인식이 33%로 가장 많았다. ‘선별복지/증세찬성’이라는 비주류적 인식은 12%에 불과했다. 유형별로 기본소득제에 대한 찬반 문제를 살펴보면 ‘보편복지/증세찬성’ 유형에서는 기본소득제 찬성이 76%로 압도적인 반면 ‘선별복지/증세반대’ 유형층에서는 43%로 가장 낮았다. 가장 규모가 많은 보편복지에 찬성하지만 증세에 반대하는 현실주의적 인식유형에서는 기본소득제 찬성이 59%로 선별복지 선호층에 비해서는 지지가 높지만, 복지증세에 찬성하는 층에 비해서는 17%포인트가량 낮은 지지를 보인다.
여론 핵심 변수: 기대효과의 구체화 및 증세 여부
기본소득제 논의 단계에서 앞으로 실제 시행단계로 접어들게 되면 현 시점의 여론은 한 차례 조정국면을 겪게 될 것이다. 우선, 현재는 이론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할 경우 시민들이 누리게 될 구체적인 혜택과 효과가 얼마나 구체화될 수 있을지가 변수다. 또한 기본소득제 추진과정에서 최대변수는 기본소득제의 재원마련 방안으로서 ‘증세’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따라 여론은 크게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조사에서 기본소득제 찬반을 물어본 다음 응답자를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편에는 ‘아동수당, 기초연금과 같은 기존의 복지제도를 대체하거나 정부 예산 절감을 절감하여 증세 없이 재원을 마련할 경우’ 기본소득제에 대한 태도를 묻고(A그룹 464명), 나머지 그룹에서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해 증세가 필요할 경우’ 기본소득제에 대한 태도를 추가로 질문했다(B그룹 536명).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추가 증세 없이 기본소득제가 가능할 경우’ 기본소득제 찬성 비율은 57%에서 69%까지 상승하고, 반대로 ‘추가 증세가 필요할 경우’ 기본소득제 찬성 비율은 44%까지 떨어져 여론의 반전이 확인된다.
최근 경기도에서 토지소유자의 지가상승분에 대한 국토보유세를 더 걷어 기본소득제 재원으로 쓰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도 추가 증세의 부담이 커질수록 기본소득제에 대한 반발이 강해질 것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앞으로 실제로 얼마나 기본소득제의 기대효과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 여부, 또한 증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재정확보 방안이 가능할지 여부가 기본소득제의 미래를 좌우할 전망이다. 그 해답은 이론적인 논의나 탁상행정에서 도출되기 어렵다. 핀란드, 캐나다,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에서 기본소득제의 현실적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정책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라별 상황과 처지가 다른 조건에서 다른 나라의 실험 결과만을 기다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한국형 기본소득제에 대한 보다 치열한 고민과 창의적인 정책실험이 필요한 때이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
김현아 LAB2050 연구원
[그림1] 기본소득제에 대한 찬반(%)
데이터: LAB2050•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5.17-20 (n=1,000)
[그림2] 계층별 기본소득제 찬반(%)
데이터: LAB2050•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5.17-20 (n=1,000)
[그림3] 기본소득제에 대한 기대효과(%)
데이터: LAB2050•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5.17-20 (n=1,000)
[그림4] 한국국민들의 복지인식 유형
복지비전 증세 |
보편복지 (583명) 58% |
선별복지 42% |
증세 찬성 (375명) 37% |
①보편복지 /증세찬성 (258명) 26% |
③선별복지 /증세찬성 (117명) 12% |
증세 반대 (625명) 63% |
②보편복지 /증세반대 (325명) 33% |
④선별복지 /증세반대 (300명) 30% |
데이터: LAB2050•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5.17-20 (n=1,000)
[그림5] 복지인식 유형별 기본소득제에 대한 찬반(%)
데이터: LAB2050•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5.17-20 (n=1,000)
[그림6] 증세 유무에 따른 기본소득제 찬반 여론 변동(%)
데이터: LAB2050•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5.17-20 (n=1,000, A집단: 464명, B집단: 536명 )
[그림7] 추가증세여부 질문추가에 따른 기본소득제 찬성여론의 변화
데이터: LAB2050•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5.17-20 (n=1,000, A집단: 464명, B집단: 536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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