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세 인도네시아 할머니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성지 순례(하지)를 떠난다. 무슬림의 의무 중 하나인 하지(Haji)는 평생 한 번은 메카에 방문하는 것이다. 건강이 갈수록 악화하는 데다 온 가족이 목돈을 털어 넣어야 했지만 할머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슬람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생소한 풍경이다.
27일 자카르타포스트는 하지 순례자로 낙점된 1912년 6월 1일생 수미아티 할머니 사연을 소개했다. ‘올해 인도네시아의 하지 순례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을 것’이란 설명이 따랐다. 수미아티 할머니는 동부자바주(州) 좀방 지역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하지는 이슬람의 5대 기둥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다음 달 출국을 앞둔 할머니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심장병을 앓는 그는 하지 예정자라면 치러야 하는 예행연습을 하다 쓰러져 기절까지 했다. 결국 예행연습을 마치지 못했다. 할머니는 환갑인 딸과 함께 메카로 향할 예정이다. 다른 딸인 트리씨는 “(남성이고 젊은) 내 아들을 딸려 보내려 했으나 정부가 성지 순례 동행자를 남편이나 자녀로만 한정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할머니의 남편은 1982년 세상을 떠났다.
비용 마련도 가족들에겐 부담이었다. 할머니가 성지 순례자로 뽑힌 지 1주일 안에 돈을 모두 지불해야 했다. 7,500만루피아, 우리 돈 615만원 정도다. 할머니 동네에선 공장 노동자가 3~4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거액이다. 트리씨는 “남편의 사업자금을 사용했다, 땅을 팔 필요가 없었던 점을 알라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비싼 비용 때문에 빈자들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라 하지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형편이 허락되면’ 지키는 선택 사항으로 묵인되고 바뀌는 추세다.
할머니는 사실 고령 덕에 남보다 빨리 성지 순례 참가자로 뽑혔다. 서부자바주에 이어 하지 신청자가 가장 많은 동부자바주 주민들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평균 20년을 기다려야 메카로 떠날 기회를 얻는다. 건강 탓에 한차례 신청을 무른 할머니가 다시 하지를 신청한 건 104세 때인 2016년이다. 좀방 지역에선 이번에 1,001명이 순례자로 뽑혔다.
세계에서 이슬람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인 인도네시아는 매년 20만명 이상의 성지 순례자들을 메카로 보낸다. 지난 4월 대선을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의 하지 할당량(쿼터)을 1만명 정도 늘려 받았다.
언론에 보도된 최고령 성지 순례자는 2017년 인도네시아 여성 마리아 마르가니 무함마드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104세였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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