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에 뛰어든 조직폭력배들이 잇따라 검거되고 있다. 해외에서 전화기 몇 대 놓고 사업하는 편이 국내에서 주먹 쓰는 것보다 덜 위험하고, 돈도 되고, 형량은 적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7일 중국과 필리핀에 각각 보이스피싱 콜센터 사무실을 차리고 100여 명에게 약 9억4,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총책 김모(37)씨와 팀장 박모(39)씨를 포함한 39명을 범죄단체조직, 사기 등 혐의로 검거해 3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보이스피싱 피의자에게 범죄단체조직 혐의가 적용된 것은 조직폭력배인 이들이 조폭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사무실을 두고 4억원 이상을 챙긴 총책 김씨는 인천지역 폭력조직의 일원이다. 김씨는 같은 조직의 김모(35)씨를 대외관리책으로 두고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조직을 총책, 관리자, 팀장 등으로 구성한 뒤, 조직원들의 형제, 사촌, 친구 중 돈 문제가 급한 이들을 범행에 끌어들였다. ‘2인 이상 이동 금지’ ‘휴대폰 일괄 보관’ 등 엄격한 행동강령으로 조직원들을 통제했고, 실적이 낮은 조직원에게는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 실적이 좋으면 아이패드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가담자들은 이들이 조폭이란 사실을 알고 있어 더욱 두려워하며 순종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김씨 등이 뜯어낸 돈이 90억원대에 이른다는 진술을 확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7년 5월 전북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검거한 보이스피싱 조직도 조폭 출신 A(32)씨가 운영했다. A씨 등 일당 15명은 200여 개의 대포통장(타인 명의 통장)을 만들어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팔아 넘기기도 했다. 지난해 1월 부산지검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 B(27)씨 등 19명을 구속기소했는데, 이 가운데 5명은 칠성파 등에 속한 조직폭력배였다.
조폭의 보이스피싱 진출을 적발해내긴 쉽지 않다.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이번에 검거한 김씨는 조직폭력배 관리대상에 올라 있어 조폭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며 “그 외의 경우는 먼저 조폭이라 자백하는 경우가 없어 알게 모르게 조폭과 연결된 보이스피싱 단체가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폭들의 보이스피싱 진출을 막으려면 대포통장부터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 조폭 생활을 하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한 경험이 있는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보이스피싱의 높은 수익률을 감안하면 적발되더라도 ‘꼬리 자르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아무 것도 모른 채 대포통장을 제공하는 사람들부터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두 조직과 별개로 지난 4월 인터넷 전화 559대를 다른 사람 명의로 개통한 뒤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에 공급한 이모(39)씨 일당 4명도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검거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이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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