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범죄혐의와 관계 없는 자료까지 포괄적으로 가져간 뒤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관행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다. 법원이 이른바 ‘독수독과(毒樹毒果)’ 원칙에 따라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배제한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향후 사법농단 재판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차문호)는 27일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이 부인됐고,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범죄혐의가 증명되지 않는다”며 군사기밀보호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방위사업체 A사의 납품 업무 담당 직원 김모씨 등 6명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2014년 11월경 방위사업청 소속 군인들이 A사 직원으로부터 식사접대 등을 받았다는 제보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보를 받은 국방부 조사본부는 직원들이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제출하지 않자 2015년 6월 영장을 발부 받아 A사 사무실에서 컴퓨터 하드와 외장하드, 업무 서류철을 통째로 압수했다. 이와 함께 기밀유출 수사에 착수한 기무사는 2015년 9월 김씨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다른 영장에 기재된 압수물의 일부를 열람하는가 하면 범죄 혐의와 관련 없는 자료를 함께 압수했다. 군 수사당국은 이런 과정을 통해 김모씨 등을 군사기밀보호법 위법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군 수사당국의 수사 관행을 도리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4차례 영장집행이 모두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영장에 ‘~등’이라고 기재돼 있다고 해도, 판사가 이를 관련 행위 전반에 대한 일반적ㆍ탐색적 압수수색을 허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사기관이 회사나 개인에 대해 압수수색을 함에 있어 수사 대상 혐의와 무관한 컴퓨터저장장치, 서류철까지 모두 압수해 가져간 다음, 장기간 보관하면서 이를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 해당 증거들은 물론 그 증거들에 기초해 수집된 2차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증거이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법원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사건에서도 범죄혐의와 관련 없이 수집된 증거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며 증거능력을 박탈했다.
법원이 잇따라 위법한 증거 수집에 제동을 걸고 나오면서 사법농단 재판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법원행정처에서 압수수색하거나 행정처에서 저장매체 등을 검찰에 임의제출하는 과정에서 절차의 위법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나섰기 때문이다. 박병대 전 대법관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으로부터 검찰이 압수한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긴 파일 상당수가 불법 증거물이라고 구체적 사례까지 지적했다.
법원의 제동에 검찰 안팎에서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에서 자꾸 압수수색을 통한 별건 수사를 강조하는데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압수수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연히 나온 또 다른 범죄 증거까지 눈감고 돌아가라는 건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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