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교과서 밖 과학] ‘우주 아기’ 탄생 가능할까

입력
2019.06.29 13:00
16면
0 0
정자와 난자의 수정 과정을 나타낸 상상도. 게티이미지뱅크
정자와 난자의 수정 과정을 나타낸 상상도. 게티이미지뱅크

“우주에서 아기를 얻는다는 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데세우스 여성병원의 몬트세라트 보아다 박사는 2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생식의학회(ESHRE) 연례회의에서 “냉동한 정자를 미세중력에 노출시켜 정자의 운동성 등을 관찰해봤더니 지상에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세중력은 무중력에 가까울 정도로 중력이 낮은 상태다. 우주에서의 임신과 출산은 또 다른 문제라고 하겠지만, 일단은 남성의 정자를 우주 공간에까지 안전하게 옮기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냉동된 상태의 정자를 모아 둔 우주 정자은행 설립에 한 발 더 나아간 것인데, 정자은행을 활용한 인공번식은 우주 식민지 개척에 필요한 주요 수단으로 여겨질 정도로 관련 학계에서 주목하는 이슈 중 하나다. 보아다 박사는 “미세중력이나 무중력 상태에서 일반 정자의 운동성이 현저히 감소한다고 보고된 적 있지만 냉동된 정자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는 알려진 바 없다”며 “이번 연구는 정자를 냉동상태로 우주로 옮겨도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인 카탈루냐 공대 미세중력 연구진이 함께한 이번 연구는 저중력 상태를 짧은 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는 소형 곡예비행 훈련기 ‘CAP10’를 이용했다. 이들은 우선 건강한 남성 10명에게서 얻은 정자를 얼린 뒤 훈련기에 실었다. 그런 다음 훈련기가 포물선 비행을 하면서 각 포물선 비행 때마다 8초간 미세중력 상태를 만들었다. 포물선 모양으로 날고 있는 비행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일시적으로 미세중력이 생긴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연구진은 냉동했던 정자를 해동한 뒤 농도(정액 1㎖ 속에 들어 있는 정자의 수)와 생존해 있는 정자의 비율, 운동성, 형태 등을 지상에 있었던 정자와 비교했다. 이들 항목은 남성불임을 판단하기 위한 정액검사에서 살펴보는 대표 항목이기도 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냉동했던 정자의 생존비율이 지상에 있던 정자와 100% 같았던 것이다. 정액 속 정자 100개 중 70개가 살아 움직이는 남성의 정액을 얼렸다가 미세중력에 노출시킨 다음 해동해봤더니 여전히 70개의 정자가 생존해 있다는 뜻이다. 해동한 정자의 농도와 운동성은 지상에 있던 정자의 90% 수준으로 조사됐다. 미세중력이 정자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보아다 박사는 냉동 정자를 더 오랜 시간 미세중력에 노출시키고, 얼리지 않은 정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에 한계는 있었다. 무차별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우주방사선 등 ‘우주 생식’의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주방사선과 중력 환경 변화는 성인은 물론, 수정한 뒤 끊임없이 분화하며 성장하는 배아에게도 큰 위협일 수밖에 없다. 우주방사선은 흑점 폭발로 태양에서 나오는 태양 우주방사선(SEP)과 초신성 폭발 등 태양계 밖에서 만들어진 은하 우주방사선(GCR)으로 나뉘는데, 우주방사선 속 중이온은 알루미늄으로 만든 우주선도 뚫고 들어올 정도다. 현재 기술로는 우주방사선 피해를 줄일 마땅한 방법이 없다. 냉동한 정자를 우주까지 안전하게 옮겨도 아직까진 보관 과정에서부터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가 주목되는 이유는 우주방사선으로 손상된 정자여도 생식능력엔 이상이 없다는 기존 연구결과가 더해지면서 ‘우주 생식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주장의 설득력에 좀 더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앞서 2017년 5월 일본 야마나시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우주에 보관한 실험용 쥐 정자를 이용해 지구에서 2세를 생산하는데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우주에서 포유류가 번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다.

이들은 실험용 쥐 12마리에서 채취한 정자를 동결한 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내 9개월간 보관한 다음 지구로 가져와 난자와 수정시켰다. 이런 방법으로 73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우주에 머물렀던 정자의 출산율은 약 10%였다. 지구에 있던 정자의 인공 출산율(11%)보다 고작 1%포인트 낮았다. 9개월간 우주 공간에 머문 정자의 방사선 피폭량은 178밀리시버트(mSv)로 같은 기간 지상에서 보관된 정자의 약 100배에 달했다. 이들은 “수정 과정에서 난자에 의해 정자의 손상된 DNA가 복원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2월 민간 우주탐사 기업 블루 오리진의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미래 인류는 행성 표면에 정착하기보다는 거대한 우주식민지(giant space colonies)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의 CEO 일론 머스크는 향후 50~150년 안에 최소 100만 명 규모의 자급자족 화성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주 생식도 더 이상 공상과학(SF) 속 이야기가 아니란 얘기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