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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부자의 품격

입력
2019.06.28 18:00
수정
2019.06.28 19:1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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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억만장자 엘리 브로드(86)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제발 내 세금을 인상해달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 부유세 도입을 촉구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부유세는 미국 힘의 정신을 침식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지 소로스 등 미국 억만장자 19명도 도널드 트럼프 등 2020년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더 많은 세금을 거두라고 요구했다. EPA=연합뉴스
미국 억만장자 엘리 브로드(86)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제발 내 세금을 인상해달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 부유세 도입을 촉구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부유세는 미국 힘의 정신을 침식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지 소로스 등 미국 억만장자 19명도 도널드 트럼프 등 2020년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더 많은 세금을 거두라고 요구했다. EPA=연합뉴스

‘0.1% 최고 부자들은 자랑스럽게 세금을 내야 한다.’ 미국 억만장자 19명이 대선 후보들에게 서한을 보내 부유세를 걷으라고 촉구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스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미국은 우리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할 도덕적, 윤리적, 경제적 책임이 있다”며 “부유세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고 공평한 기회를 창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30년간 미국 하위 50%의 부는 9,000억달러 줄어든 반면, 상위 1%는 21조달러 늘어났다.

□ “우리 가문은 국가경제 덕에 얻은 이익을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데 오래 전부터 공감해 왔다.”(데이비드 록펠러) 미국에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앤드루 카네기의 지혜에 공감하는 억만장자가 많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재산의 99%를 기부하기로 서약했다. 자녀에게 1,000만달러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빌 게이츠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재산이 자녀에게 돌아가는 것은 그들에게도 건설적이지 않다”고 했다.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미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다.

□ 외환위기 이후 부자 되기 열풍이 한동안 한국사회를 휩쓸었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와 ‘10억 만들기’가 유행했다. 이처럼 개인은 부자를 꿈꾸지만 사회적으로는 부자를 시기하고 기업을 매도하는 풍토가 강하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부정적이다. 조선시대 청빈(淸貧) 의식과 노동경시 문화가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 우리 조상들은 가산(家産)을 늘리고 가업(家業)을 잘 유지하기보다는, 입신출세하여 가문의 체통을 유지하는데 더 큰 가치를 부여했다.

□ 척박한 기부문화도 반(反)기업 정서의 원인이다. 연말이나 재난 때 이뤄지는 기부를 보면 대부분 개인 재산이 아닌 기업 자금이다. 드물게 내놓는 사회공헌기금 또한 편법 경영권 승계나 비자금 조성 등 사회적 물의를 만회하려는 의도인 경우가 많다. 부의 축적과 세습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세금 탈루 등 불법이 만연했음은 물론이다. 부자와 기업을 미워하는 정서를 그대로 두고 선진국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근면한 노동과 부의 증대를 긍정하는 국민의식 변화와 함께 돈을 아름답게 쓰는 품격 있는 부자가 늘어나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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