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와 전공의는 교제를 하고 있었다. 전공의가 제보자에게 보낸 메시지는 상당히 자책을 하는, 과장된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 한양대병원 대외협력실이 지난 23일 기자에게 보내온 ‘보도 반박 자료’ 중 일부다. 지난해 2월 이 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A씨가 태어난 지 일주일 된 미숙아에게 고칼륨혈증 치료제인 인슐린을 과다 투여했고, 당직 근무 중에도 다른 전공의들과 어울려 상습적으로 술을 마셨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지 이틀 뒤에 내놓은 자료다. 제보자가 A씨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그대로 언론에 공개했으니, 병원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병원 측은 당시 처방 기록을 확인, 애초 언론보도와 달리 인슐린이 원래 투여하려던 양의 100배가 아니라 8.35배 정도만 과다 투여됐다고 밝혔다. 또 A씨가 인슐린을 과다 투여한 것은 월요일 오전 근무 때여서 음주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A4 용지 1장 분량의 반박 자료에는 상세한 투약 분량과 시간이 적혀 있다. 그런데 병원은 왜 제보자가 A씨와 한때 사귀었다는 얘기를 굳이 집어 넣었을까.
개인적 원한이나 사적인 보복,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불만 등은 내부고발자에게 흔히 덧씌워지는 올가미다. 내부고발자의 순수성을 흔들기 위함이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인 이상희 변호사는 “내부고발사건에서 제보 동기를 문제 삼는 것은 책임 회피, 자기 방어를 위해 매우 흔히 일어나는 반작용”이라고 꼬집었다.
한양대병원이 제보자가 A씨의 옛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힌 것은 제보자를 흔들려는 의도로 읽힌다. 병원은 A씨가 연인관계였던 제보자에게 사적으로 보낸 글이라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훨씬 더 과장해서 전달했다는 설명을 달았다. 이는 징계위원회 격인 전공의 교육수련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의 일이다. 뒤이어 열린 교육수련위는 A씨의 음주당직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
이쯤 되면 A씨와 함께 술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 전공의 3명에 대한 이야기는 더 볼 것도 없다. 병원 측은 “A씨와 함께 술 마시는 듯한 사진은 제보자가 제공한 것인데, 전공의들이 부인하고 있어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이들 중엔 여차하면 수술실로 달려가야 할 외과 전공의도 있다 한다.
한양대병원은 성형외과 전공의가 30대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과다 투여해 숨지게 하고 병원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병원이 제보자가 A씨의 옛 연인이었음을 구태여 밝힌 건, 어쩌면 또 다른 잠재적 제보자의 입을 막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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