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시행 1년… 직장인들 달라진 풍경
서울 광화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김민정(35)씨는 일주일에 두 번은 평소보다 한두 시간 일찍 출근한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퇴근시간은 두 시간 가량 앞당겨졌지만 업무량은 그대로라 일찍 출근 하지 않으면 도저히 제 시간에 일을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잦은 조기 출근과 강제 퇴근”이라며 “점심도 샌드위치로 때우고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직장인들의 생활 패턴이 크게 변하고 있다. 일반 사무직의 경우 정시 퇴근이 정착되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찾게 됐다며 반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52시간 근무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직장에서는 점심 시간도 여유가 생겼다는 반응이다. 서울 을지로 시중은행 본점에서 일하는 김민호씨는 “회사가 점심시간엔 아예 일을 하지 말라며 컴퓨터를 끄는 PC오프제를 시행한 덕분에 지금은 점심 때 눈치보지 않고 회사 안 헬스장을 간다”며 “주변에 나처럼 점심시간을 이용해 취미활동을 하는 이들도 많아 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업무량을 채우기 위해 조기출근하고 점심 시간까지 쪼개서 일하는 등 고충도 그만큼 커졌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서울 강남의 한 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윤모(25)씨는 “하루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 일하면 정식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어쩔 수없이 밥 먹는 시간을 줄여가며 일한다”며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울 수밖에 없는 사정을 토로했다. 윤씨는 “점심시간을 쪼개 일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회사 주변 식당에서 삼삼오오 모여 느긋하게 점심을 즐기던 예전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다”면서 근무 환경의 변화상을 소개했다.
52시간 근무제에 돌입한 기업들이 직원들의 업무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근무강도가 높아졌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불가피하게 점심 시간이나 퇴근시간 이후에 일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지만 근무시간에 포함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계열 제조회사에 다니는 김모(33)씨는 “동료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무실을 나간 시간 전부 근무시간에서 제외돼 가급적 자리를 뜨지 않는다”며 “그런데 업무량이 많아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일할 때도 많은데 이런 시간은 근무로 인정되지 않아 어쩔 수없이 무료 봉사하는 시간도 늘었다”고 토로했다. 서울 여의도의 한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한모(36)씨도 “업무 마감일인 매달 말이면 일주일 전부터 야근을 서지만 아무도 야근한 시간은 업무 시간으로 넣지 않는다”며 “회사만 좋은 일 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 억울하다”고 꼬집었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은행이나 주민센터와 같은 관공서 업무를 보는 게 힘들어졌다는 푸념도 들린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점심 시간 말곤 은행 갈 시간이 없는데 이 시간대에 직장인이 몰려 번번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는 글에 “정말 반차라도 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글쓴이에 공감한다는 댓글이 십여 개 달렸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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