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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꾀병

입력
2019.06.28 04:40
수정
2019.06.28 09:4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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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병 한 번 부리지 않고 어른이 되는 경우는 드물 거예요. 스스로 꾀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내가 있고, 알면서도 혼을 내는 대신, 많이 아파? 그러면서, 이마에 얹어주는 따뜻한 손이 있을 때 꾀병은 성립하지요.

다양한 꾀병의 역사 속에서 어른이 된 나는 꾀병의 지혜를 갖게 되지요. 아픈 척을 해서 하기 싫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서의 대응법이라면, 슬픔이 올 것을 예감으로 아니까, “곧 아플 겁니다./슬픔이 오기 전에 아플 거예요”, 미리 아픈 거예요. 그러니까 물에 빠진 개와 눈이 마주쳤을 때 마침 차가워지는 엄살은, 예열이면서 선언이면서 슬픔에 마중 나가기지요.

“우아한 몸짓으로 뛰어내렸는데/온몸이 이렇게/여기 있”는 아이러니의 반복이 “아프고 나면, 정말 아플 겁니다”의 배짱을 갖게 된 사연. 이러한 비로소 어른의 탄생은 사실은 꾀병의 내력에서부터.

많이 아픈 순간에도 꾀병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조금은 견딜 만하고, 조금의 힘도 생기지요. “개의 얼어붙은 꼬리를/꼭 붙잡고 매달려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그러니까 누가 꾀병을 부리는 것 같으면, 어쩌면 매우 아파서 ‘다이빙 다이빙 그런데도 온몸은 계속 있네’의 상태인지도 모른다고 여겨주세요. 스스로에게 속는 힘을 발휘 중인 것은 스스로를 믿는 힘을 기르는 중인 것이니, 살짝 눈을 감아 주면서 우아한 꾀병에 힘을 실어주기로 해요.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툭, 이마에 손을 짚어준다면 더 좋고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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