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불합리한 시대착오 조직 문화 
 밀레니얼뿐 아니라 인재들 다 떠나 
 변화하지 않는 조직에 미래는 없다 
“일하러 온 일터에서 왜 술야근까지 해야 하나요?” ‘아저씨’ 상사만 ‘소통한다’고 착각하는 회식 자리를 불편해하는 건 이제 밀레니얼 세대만이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아저씨들 대체 왜 이래!” ‘개저씨’란 비속어로 불릴 정도로 만연한 중장년층 진상짓이 일본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인가 보다. 조직과 리더십 전문 컨설턴트이자 작가인 야마구치 슈가 ‘쇠퇴하는 아저씨 사회의 처방전’이란 책을 냈다. 길거리 소란만이 아니라 성범죄, 기업 비리, 일터 폭력 등 온갖 추문의 중심에 선 아저씨들. 그렇다고 중년 남성을 싸잡아 모욕한다는 오해는 마시라. 그가 주목한 건 낡은 가치관에 빠져 새로운 가치관을 거부하고, 과거의 성공에 집착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서열 의식이 강해 높은 사람에게 아첨하고 아랫사람을 우습게 여기며, 낯선 사람과 이질적인 것에 배타적인 ‘망가진 아저씨’, 그리고 그들이 망가뜨리고 있는 조직과 사회다.

고도 성장기에 20, 30대를 보내 “사회가 제시한 시스템에 올라서기만 하면 풍요롭게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환상”을 내면화한 이들이 그 환상이 무너지자 울분을 발산한다는, 세대론 기반 분석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게다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불변의 법칙을 들이대, 모든 조직과 리더는 ‘필연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에 이르면 절망감마저 든다.

그래서 ‘처방’은? 저자는 40대 이하 청장년층이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해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일러준 무기이자 첫 걸음은 권력자를 향해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거나, 그 불온한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선(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의견 제시도 이탈도 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한 일에 자신도 가담하고 이를 주도한 권력자를 지지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끝내는 스스로도 “영혼은 죽어버린 좀비 같은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경험과 통찰이 담긴 저자의 진단과 처방은 깔끔하고 신선하고 제법 깊이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에 대입해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 보면 착잡함이 밀려온다. 경제학자 우석훈의 지적처럼 민간이든 공공영역이든 한국의 조직은 직급과 입사 서열뿐 아니라 학교와 고향 선후배 등 갖가지 위계가 겹겹이 쌓이고 얽혀 일반적 조직론이 통하지 않는다. 대형 서점의 경제ㆍ경영 서가에 넘쳐나는 리더십과 조직론 서적은 대부분 번역서거나 선진국 유수 기업들 사례를 엮은 것이란 점이 이를 방증한다. 혁신을 부르짖는 대기업조차 솔직하고 꼼꼼하게 조직과 업무 시스템을 분석하길 꺼리고, 어쩌다 외부기관에 맡긴 컨설팅 결과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거나 ‘전시용’이 되고 만다. 그러니 주 52시간 도입 과정에서도 낡은 업무 시스템의 비효율을 줄이려는 노력은 실종된 채 정치 공세까지 가세한 아우성만 요란하다.

우석훈은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에서 비효율과 불합리가 만연하고 권력자 지시에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 생태를 ‘질서정연한 바보짓’이라 개탄한다. 여기에 검찰 조사를 피하려 서버를 통째 파묻는 따위 불법을 서슴지 않는 ‘질서정연한 나쁜 짓’도 횡행한다. 이렇듯 군대 혹은 조폭을 닮은 조직들에서 혁신을 외치고 변화를 꿈꾸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요즘 기업들이 ‘밀레니얼 세대’ 분석에 분주하다. 디지털 경제의 주소비자로 시장을 뒤흔들고 신입사원으로 조직에 발을 들이면서 견고하던 조직문화에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90년생이 온다’ 같은 분석서에서 언급하는 이 세대 특성은 칼퇴근이나 회식 기피 등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추구, 공정과 자율, 다양성 중시, 여차하면 퇴사 등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앞선 세대가 그저 참고 견뎠을 뿐인 나쁜 관행에 반기를 든 것은 이상할 것도, 과할 것도 없다. 야마구치의 처방을 대입하면 이들 세대가 비로소 ‘의견’과 ‘이탈’을 무기 삼아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셈이다.

조직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길 기대할 순 없다. 젊은 세대가 다 옳고, 옛것들은 모조리 파괴해야 마땅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수명을 다한 낡고 견고한 문화를 버리지 못하는 조직은 쇠퇴를 거듭하다 종국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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