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거래제한 대상에 올렸지만 미국 반도체기업들이 화웨이에 계속 제품을 판매해왔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소식통을 인용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가 세계 각국에 화웨이 보이콧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작 집안 단속에는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인텔과 마이크론을 포함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밖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거래제한 조치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해 약 3주 전부터 수백만 달러어치의 제품을 화웨이에 판매해왔다고 NYT는 전했다. 앞서 미 상무부는 지난달 16일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일명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거래제한 명단(Entity list)에 올렸다. 이 명단에 오른 해외 기업들과 거래하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 조치 이후 일단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가 미국 밖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법률 자문을 거쳐 거래를 재개했다는 것이다. 미 상무부 출신이며 로펌 에이킨 검프의 파트너인 케빈 울프는 반도체 기업들에게 이를 자문해줬다고 밝히면서 상무부 관리들이 최근 몇 주간 자신에게 제재 범위에 대해서 동일한 정보를 제공해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 기업이 화웨이에 계속 부품을 판매하는 방법을 모색해왔고 어떤 기업들은 아예 일부 품목의 생산 시설 전체를 해외로 옮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 분쟁이 계속되면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철수하기도 하지만, 미국 정부의 규제를 덜 받기 위해 미국 밖으로 생산 라인을 옮길 수 있다는 경고다.
트럼프 정부는 이 같은 미국 기업들의 화웨이 거래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일부 관리들은 법의 취지를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화웨이에 대한 정부의 압박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반면에, 일부는 미 기업들에 미칠 타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거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고위 관리는 NYT에 “정부 관리들은 이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 하지만, 이번 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까지는 그럴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G20 무대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간 무역 담판을 지켜본 뒤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미다. NYT는 미국 기업들의 편법 거래는 기업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단속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전자 업계를 묶고 있는 무역 거래망을 변형시키려 할 경우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의 편법 거래를 용인하면 동맹국들에게 요구하는 화웨이 보이콧의 설득력도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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