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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걸린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 그는 죽고 없었다

입력
2019.06.26 16:08
수정
2019.06.26 22:1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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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조위, 잘못된 피해지원 사례 발표… 의료비 임의 삭감 등 정부가 피해자 고통 가중시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 김태종(왼쪽 두 번째)씨가 26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잘못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기자회견’에 참석해 아내를 간병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준기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 김태종(왼쪽 두 번째)씨가 26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잘못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기자회견’에 참석해 아내를 간병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준기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정모(69)씨는 2017년 12월 특별구제계정(4단계) 피해자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정씨는 그보다 한 달 전 세상을 떠났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다 뒤늦은 피해 인정도 모른 채 눈을 감아야 했다. 2016년 8월 피해 신청 접수를 한 정씨가 판정 결과를 받기까지는 무려 1년 4개월이 걸렸다.

또 다른 피해자 주모씨도 2016년 피해자 신청을 한 뒤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다 같은 해 12월 사망했다. 보호자는 주씨가 세상은 뜬 뒤 피해 신청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 따르면 정부는 신청 60일 이내에 피해구제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건강피해 인정 여부 및 피해등급 등을 결정해야 한다. 30일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기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게 부지기수다. 신청 서류 등 보완과 의학적 판단을 위한 진단ㆍ검사 등에 소요된 기간이 고려되지 않는 탓이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ㆍ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26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18층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습기살균제 피해신청자 6,446명 중 정부 인정 피해자인 구제급여 대상자가 12.8%에 불과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정부와 기업 등의 지원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조차 비현실적인 지원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피해 사례들을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3명의 피해자들이 참석해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아내를 11년째 간병 중인 김태종(64)씨는 “하루 최소 15번 가래를 빼내줘야 하는데 간병인을 고용하려면 적어도 340만원이 필요하지만 지원 받는 간병비는 15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턱없이 부족한 지원 속에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아내의 간병을 홀로 떠안으면서 우리 집은 엉망이 됐다”고 토로했다.

폐가 13% 정도밖에 남지 않은 김씨 아내는 2017년 기업자금으로 조성된 특별구제계정 대상자로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간병비, 요양생활급여 등 지원은 한참 부족했다. 장기간 투병으로 인한 합병증 치료 비용, 혈압계 등 의료기기에 대한 지원이 ‘가습기살균제와 관련 없다’는 이유로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 김희주(45)씨는 지난 1월 14일 건강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3개월 뒤 환경보건센터로부터 이상 소견이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을 찾아가니 폐암 1기였다. 첫 검사 4일 뒤 영상판독에서 이미 폐암 징후가 발견됐지만 김씨에게는 3개월 뒤 연락이 왔다. 김씨는 “환경보건센터 측에 늦은 통보의 이유를 물으니 ‘3개월 단위로 행정처리를 한다’고 답했다”며 “운 좋게 초기에 발견했지만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허술한 모니터링으로 피해를 입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조위는 이들 외에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다양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했다. 피해자 안모(50)씨는 병원 진료를 위해 KTX를 이용하면서 매년 1,000만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지만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 교통비 지원 항목이 없어 모두 자비로 부담 중이다. 천식이 인정질환으로 확대되며 지난해 3월 구제 급여 대상으로 인정된 조모(49)씨는 정부가 ‘천식피해등급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제급여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기존에 받던 요양급여가 중단됐고, 3개월이 지난 뒤에야 소급 지원을 받기도 했다.

특조위는 위 증언들을 포함해 △임의로 삭감하는 의료비 △간병할 수 없는 간병비 지급 △현실적이지 못한 요양생활수당 △치료를 위한 교통비 미지원 △개인성금도 임의대로 공제하는 정부지원 △늑장 행정으로 중단된 요양급여 △기준과 원칙이 부족한 긴급지원 △피해자 불만 가중시키는 건강모니터링 △사망 후에야 도착한 판정결과를 대표적 피해 사례로 꼽았다.

황전원 특조위 지원소위원회 소위원장은 “법과 시행령 개정이 필요한 사항들이 있는 만큼 논의 과정을 통해 피해자가 실질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개정 요구안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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