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초저지연 기술 핵심 ‘엣지’
5G 이동통신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건 ‘초고속’과 ‘초저지연’, ‘초연결성’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5G의 최대속도를 4G(LTE) 최대속도 1기가바피에스(Gbps)보다 20배 빠른 20Gbps, 지연시간은 LTE 대비 10분의 1 수준인 1밀리세컨드(msㆍ1,000분의 1초), 1제곱㎞당 연결 기기 수는 LTE(10만개)의 10배인 100만개로 정의하고 있다.
5G 상용화 초반, 이동통신사들은 ‘초고속’에 보다 힘을 줬다. ‘LTE보다 20배 빠른‘ 혹은 ‘꿈의 속도’ 등 화려한 수식어를 언급하면서 ‘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인터넷보다 훨씬 빠른 새로운 인터넷이 등장했다’는 식으로 고객들의 이목을 끌려고 했던 것이다. 고객들 역시 ‘빠르면 장땡‘이라는 식으로 5G의 등장을 바라본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 이동통신사들은 ‘초저지연’ 기술 구현에 좀 더 집중을 하는 모양새다. 초저지연은 간단히 말해 ‘입력과 출력의 시간 차가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특정 방송을 볼 때 방송 사고 등을 이유로 인위적으로 시차를 만들어 영상을 보여주는 ‘5초 지연 방송’ 같은 문구를 볼 때가 있는데, 통신 등에서는 여러 이유 때문에 조금씩의 불가피한 지연 상태가 벌어진다.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상대 목소리가 실제 상대가 말하는 시점과 동일하지 않다는 얘기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예로 들어볼 수도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A사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스마트폰으로 A사 서비스 접속 후 원하는 곡을 찾아 재생하기까지 최소 4단계를 거치게 된다. 스마트폰에서 어떤 곡을 검색해 재생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이 명령은 근처 ‘기지국’으로 간다. 그 뒤에는 과거 전화를 건 사람과 받을 사람을 연결해 주던 ‘전화 교환수’처럼 해당 명령이 명령을 수행할 곳을 찾아가도록 연결해 주는 ‘교환국’을 거치게 되고, 인터넷망을 타고 A사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까지 전달되는 식이다. 명령에 따른 반응 즉, ‘OO곡 재생’이 또 같은 과정을 거쳐 스마트폰까지 내려와 ‘OO곡 재생’을 수행한다.
물론 지금은 음원이라는 가벼운 용량의 콘텐츠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LTE 속도만으로도 별 지연 없이 바로 반응이 가능하다. 하지만 초고용량의 콘텐츠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연시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 단순히 기다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전달해야 하는 명령이 원격 수술 중인 의사의 움직임이라거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율자동차의 위험 신호라면 더더욱 그렇다. 약간의 지연이 엄청난,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5G를 기반 기술로 산업 혁신을 일궈내기 위해선 ‘초저지연’을 얼마나 빨리 현실로 구현해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지름길 ‘엣지’
여기서 등장하는 게 초저지연의 핵심, 바로 ‘엣지(edge)’다.
지금의 무선 데이터 처리 방식은 ‘중앙 집중형’이다. 전국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트래픽은 일단 IDC 등 핵심 서버가 있는 수도권의 중앙통신센터로 전송된 뒤 이용자에게 다시 되돌아가는 방식이다. 데이터가 오가야 하는 물리적 거리가 길어 아무리 초고속 특성으로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여도 지연시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산 아래 터널을 뚫는 것처럼, 데이터 전송 구간에도 지름길이 필요하다.
그래서 활용되는 게 ‘엣지 컴퓨팅’이다. 여기에서 ‘엣지’는 가장자리, 말단 등의 의미를 갖는다. 데이터 처리 핵심 역할을 하는 서버를 중앙에만 몰아두지 않고 가장자리, 이용자와 가까운 위치로 내려 보내는 ‘분산형’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이용자들과 가장 가깝고, 서버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지국, 교환국 등이 적합하다고 판단해 전국 주요 지점에 엣지 컴퓨팅 서버, 데이터 센터 등 장비를 내장하는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KT 관계자는 “중앙통신센터까지 갈 필요 없도록 서울과 부산, 대전, 제주 등 8곳에 별도의 5G 엣지 통신센터를 구축해 이 곳에서 바로 명령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며 “여기에 더해 초저지연이 필요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AI) 분석 기능 등이 포함된 엣지 클라우드도 추가로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 혁신에 날개 달아줄 엣지
전문가들은 엣지 컴퓨팅 특징으로 안정성과 즉시성, 효율성을 꼽는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박준민 책임은 ‘엣지 컴퓨팅이 가져올 변화’ 보고서를 통해 “중앙 서버 의존도를 낮출 수 있어 안정적으로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하고 해킹 등 공격에 대한 노출을 줄일 수 있다”며 “데이터의 물리적 거리가 짧고 연산을 위해 다루는 데이터 양도 중앙 서버에 비해 적기 때문에 빠른 연산과 응답이 가능한 ‘즉시성’, 데이터 부하를 줄이는 ‘효율성’ 등을 가진다”고 밝혔다.
엣지 컴퓨팅 활용성이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자율주행차, 증강현실(AR)ㆍ가상현실(VR) 등 차세대 미디어, 스마트팩토리 등이다. 자율주행차 한 대가 하루에 생산해 낼 데이터는 약 4,000기가바이트(GB) 정도. 자동차 속 사용자의 안전이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기 때문에 엣지 컴퓨팅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AR, VR 몰입도도 한층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사람이 일상적 밝기 조건에서 안면을 인식하는 데는 최소 370ms, 최대 620ms가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의 시청각 반응 능력이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엣지 컴퓨팅을 활용해 지연시간을 단축하면 고품질의 AR, VR 등을 제공할 수 있다. 공장 내 다양한 설비들이 24시간 수집하는 대량의 데이터 역시 각 공장 맞춤형 분석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엣지 컴퓨팅이 활발하게 활용될 산업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엣지의 미래는 ‘엣지 디바이스’
삼성전자는 18일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마련한 시스템 반도체 관련 전략 설명회에서 특별한 시연 행사를 진행했다. 황성우 삼성 종합기술원 부원장이 스마트폰의 모든 무선 연결을 차단한 ‘비행기모드’ 상태에서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는 AI 기반 ‘STT(Speech to textㆍ음성을 문자로 변환)’를 보여준 것이다. 외부 서버의 도움 없이 스마트폰에 들어간 반도체 자체가 엣지 컴퓨팅을 수행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현재 이동통신사들이 기지국 등에 심고 있는 엣지 컴퓨팅 능력을 앞으로는 다양한 디바이스(단말기)가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이용자와 가까운 기지국 수준에서 이용자가 손에 쥐고 있는 기기 즉, 더 말단의 가장자리 ‘엣지 디바이스’로 한 단계 더 내려간다는 얘기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사용하는 휴대폰은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해지게 되는 것이다.
장덕현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시스템온칩(SoC) 개발실장은 “특히 미래 자동차는 바퀴가 달린 엣지 컴퓨터가 될 것”이라며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보다 2~3배 더 많은 기능들이 들어갈 것이고 자동차 스스로 데이터를 자체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개발실장은 “앞으로 정보기술(IT) 생태계는 크게 클라우드(중앙 데이터 센터)와 엣지 디바이스로 구성될 것이며, 클라우드는 빅데이터 분석 등 방대한 연산 업무에 집중하고 엣지 디바이스들은 AI 기반 소규모 추론, 학습 등으로 개인 맞춤형 기능에 특화될 것”이라며 “엣지 디바이스는 차세대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지능형 개인비서, 스마트팩토리 로봇 등을 포함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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