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까지 성수기 이어질 전망에 8월말 개봉 노리는 작품도 많아
지금까지 이런 대진표는 없었다.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7, 8월 휴가철을 맞아 신작 영화들이 연달아 쏟아져 나온다. 대개 여름 시장은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등 충무로 4대 투자배급사들이 명운을 걸고 내놓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들로 경쟁 구도가 짜이곤 했지만, 올해는 할리우드 영화들까지 대거 출동해 전례 없이 복잡한 대진표가 완성됐다.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신작들이 매주 릴레이로 개봉한다. 스크린 확보를 위한 물밑 싸움도 치열할 전망이다.
◇사극ㆍ재난ㆍ공포… 장르 다양한 한국 영화
충무로의 첫 번째 주자는 7월 24일 개봉하는 ‘나랏말싸미’다. 제목이 말해 주듯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사극이다. ‘사도’ 시나리오를 쓴 작가이자 베테랑 제작자 출신 조철현(60) 감독이 15년간 준비한 시나리오로 늦깎이 연출 데뷔한다. 조 감독은 “우리나라 5,000년 역사에 가장 위대한 성취인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 사이에 신미 스님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에 흥미를 느껴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송강호가 세종대왕을, 박해일이 신미 스님을 연기한다. 총제작비 130억원이다.
조정석과 소녀시대 윤아가 호흡을 맞추는 ‘엑시트’는 유독 가스로 뒤덮인 도심에서 펼쳐지는 재난 탈출기다. 두 주인공은 대학 시절 산악 동아리에서 배운 기술과 쓰레기봉투, 박스 테이프, 고무장갑 등 일상 소품을 활용해 주변 사람들을 구한다.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평상시엔 쓸모 없던 기술이 재난 상황에서 재능으로 발휘된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며 “조정석 특유의 생활감 있는 연기가 여느 재난물과는 다른 코믹한 재미를 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2017년 ‘청년경찰’로 565만 관객을 합작한 김주환 감독과 박서준은 ‘사자’로 돌아온다. 구마 사제를 만난 뒤 내면에 잠재된 특별한 힘을 깨달은 격투기 선수(박서준)가 악령에 맞서는 오컬트 액션물이다.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타격감 넘치는 액션 장면과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한 악령의 모습에서 복합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엑시트’와 ‘사자’는 7월 31일 개봉한다. 여름 성수기에 한국 영화끼리 같은 날 맞대결은 이례적이다. 총제작비가 각각 140억원 안팎, 147억원이다.
그 뒤를 이어서 8월 7일에는 ‘봉오동 전투’가 관객을 만난다. 1920년 6월 일제 정규군을 봉오동 죽음의 계곡으로 유인해 첫 승리를 거둔 독립군들의 전투를 그린다.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더욱 뜻깊게 다가오는 역사다. 배급사 쇼박스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시대극 중에 전투를 그린 첫 영화”라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총제작비 190억원 안팎이다.
◇‘거미’와 ‘사자’로 쌍끌이 나선 할리우드
할리우드는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과 디즈니 영화 ‘라이온 킹’으로 쌍끌이 흥행을 노린다. 한국 영화에 앞서 각각 7월 2일과 17일에 개봉하는 두 영화 덕분에 여름 극장가도 일찌감치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잇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아이언맨이 떠난 이후 이야기다. 학교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떠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정체불명의 조력자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를 만나 새로운 악당과 싸운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으로 이어진 ‘어벤져스’ 서사를 완성하는 마지막 영화로, 마블 슈퍼히어로의 세대교체가 어떻게 이뤄질지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극장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알라딘’의 역주행 열풍은 ‘토이스토리4’를 거쳐서 ‘라이온 킹’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야말로 디즈니 천하다. ‘라이온 킹’은 ‘정글북’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덤보’ 등으로 이어진 디즈니의 실사 영화 시리즈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도널드 글로버와 비욘세 등이 사자 심바의 위대한 모험을 목소리로 연기한다. CG로 탄생한 아기 심바의 깜찍한 모습에 영화 팬들은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며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
8월에도 할리우드 공습은 계속된다. 광복절 연휴가 시작되는 15일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9번째 작품 ‘분노의 질주: 홉스&쇼’가 개봉하고, 8월 말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브래드 피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협업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관객을 맞이한다.
◇때 이른 추석 연휴까지 틈새 공략 영화
영화 관계자들은 “올해 여름 대진표가 복잡해진 건 절대 강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여름엔 전작에 이어서 1,000만 흥행을 당연시했던 ‘신과 함께-인과 연’을 피해 다른 경쟁작들이 개봉일을 결정했지만, 올해는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판세다.
9월 둘째 주에는 때 이른 추석 연휴가 찾아와, 여름 성수기가 추석까지 이어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추석 영화는 아니지만 추석 연휴까지 장기 흥행을 노리고 8월 중순, 8월 말 개봉을 저울질하는 영화들도 많다. 정해인과 김고은이 그리는 감성 멜로 ‘유열의 음악앨범’, 조선 팔도를 누비는 광대패가 세조에 대한 미담을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광대들’, 얼굴을 바꾸는 악령에 씐 형과 그를 구하려는 동생에 관한 이야기 ‘변신’, 신인감독이 상영 금지된 공포 영화의 실체를 찾아가는 미스터리 공포물 ‘암전’ 등이 개봉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다. 투자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시장이 성장하기엔 물리적 한계가 있는데 개봉작은 더 많아졌다”며 “같은 시기 한꺼번에 개봉했다가 공멸한 지난해 추석 연휴와 겨울 시장의 악몽이 재현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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