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중인 김해신공항으로는 동남권 관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며 건설 백지화를 줄곧 주장해온 부산ㆍ울산ㆍ경남 단체장들이 기어이 총리실 재검토 합의라는 과실을 따냈다.

결코 재검토는 없다며 요지부동하던 국토교통부의 방침을 무력화한 이들의 행보를 보면 역시 실세 단체장임을 실감하게 된다. 일단 총리실로 공이 넘어갔지만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가덕도신공항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들 단체장이 보여준 행보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민주주의의 미덕이 돼야 할 원칙과 절차를 외면하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한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신공항 결정을 뒤집는 과정부터 되짚어보자. 주지하다시피 현재 진행중인 김해신공항 확장공사는 2016년 정부의 연구용역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영남권 5개(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지자체 단체장의 합의하에 진행됐다. 당시 이들 지자체는 가덕도와 밀양 중 한 곳에 동남권 신공항을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연구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기존 김해공항에 활주로 1개를 추가하는 김해신공항 확장안을 제시했다. 국토부는 이 안을 최종 확정했고, 5개 단체장들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울경 단체장을 중심으로 ADPi가 제시한 신공항을 건설할 경우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백지화를 요구했다. 사실상 이 회사의 결정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다.

ADPi가 어떤 회사인가.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과 오를리 공항을 운영하는 파리공항공사(ADP)의 자회사로, 공항 컨설팅 분야에서 세계 수위를 다투는 전문가집단이다. 이런 회사가 내린 결론을 반박하려면 최소한 먼저 이 회사와 토론을 하거나 자문 정도는 구하는 게 상식이다. 단체장들은 그런 절차도 빠뜨린 채 나홀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러니 아무리 안전성 문제를 운운해봤자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당초 영남권 주민들의 공항 이용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된 신공항에서 대구ㆍ경북이 빠진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5개 단체장이 합의한 사항을 백지화하는 과정에서 대구ㆍ경북 단체장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누가 봐도 공정하지 않다. 오히려 이번 재검토를 계기로 부울경 단체장은 동남권 신공항이 아닌 부울경 신공항을 지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시ㆍ도민 500만명에 달하는 대구ㆍ경북에도 마땅히 제대로 된 공항이 있어야 한다”는 글을 보면 단순한 의심을 뛰어 넘는다. 정부가 차기 총선에서 PK를 잡기 위해 TK를 버렸다는 지역 여권인사들의 하소연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오 시장이 굳이 김해신공항을 버리고 가덕도 신공항에 집착하는 이유도 따져봐야 한다. 2016년 ADPi는 가덕도 신공항이 부적합한 이유 중 하나로 높은 건설비용을 들었다. 김해신공항을 확장하는 비용은 4조3,000억 가량이지만 가덕도는 10조원에 달해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측 입장이다. 지자체로서는 4조원짜리보다 10조원짜리 사업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부울경 세 단체장의 속내도 변수가 될 수 있다. 2016년 당시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에서만 주장했을 뿐 나머지 단체장들은 밀양을 적격지로 꼽았다. 경남은 밀양의 관할 행정구역이라는 이유로, 울산은 가덕도에 비해 밀양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등의 이유였다. 정권과 단체장이 교체됐다고 해서 그런 상황이 바뀔 리 없다. 만일 김해신공항 백지화가 되더라도 가덕도신공항으로 이어지기에는 너무도 변수가 많다. 어렵게 봉합된 지역 갈등이 또 다시 재현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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