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팝송 좀 듣는다는 10대, 20대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건 16비트의 경쾌한 유로댄스였다. 런던 보이스의 ‘할렘 디자이어’, 모던 토킹의 ‘브러더 루이’,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 등이 대표적이다. 10대와 20대에게 허락된 공간은 ‘롤라장’과 나이트클럽으로 갈렸지만, 너나 없이 심플한 멜로디와 가슴 뛰는 강한 비트가 결합된 유로댄스에 열광했다.
□ 1986년 국내 가요계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댄스곡이 등장했다.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가벼운 펑키사운드와 개성 있는 안무로 무장한 ‘달빛 창가에서’는 트로트와 발라드 일색이던 대중 음악계를 거세게 강타했다. 최첨단 리모트 키보드를 어깨에 메고 반짝이 양복 비스름한 패션으로 무대를 누볐던 남성 듀오 ‘도시아이들’(김창남ㆍ박일서)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맨이었다. 유로댄스가 세상을 지배하던 그 시절,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몇 안 되는 국내 가요 중 하나가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 표현으로 ‘달창’쯤 되는 ‘달빛 창가에서’였다. 86년은 가히 ‘달창’ 신드롬의 해였다.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달창’ 발언으로 사이버 공간이 뜨겁다. 그는 지난달 11일 대구 장외 집회에서 정부ㆍ여당을 비판하던 중 ‘달창’이란 단어를 썼다. ‘달창’은 극우 성향 일베 사이트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그룹인 ‘달빛 기사단’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달빛 창녀단’의 줄임말이다. 논란이 일자 그는 4시간쯤 뒤 한국당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정확한 의미와 표현의 구체적 유레를 몰랐다”며 사과했다. 나 원내대표는 그러나 20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선 “왜 과격한 발언인지 모르겠다”며 “‘달빛 창문’을 축약한 줄 알았다”고 했다.
□ ‘달창’은 문 대통령 ‘골수 지지층’이 문 대통령과 대담한 KBS 기자를 공격한다고 비난하는 와중에 사용됐다. 글의 맥락 자체가 부정적인데 기자를 공격한 게 ‘달빛 창문’이란다. 즉석 연설 중 애드리브 과정에서 무심코 사용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 달 넘게 고민한 결과가 기껏 ‘달빛 창문’이라니, 빈약하고 메마른 정치적 상상력에 헛웃음이 난다. 요즘 사이버 공간에 ‘토착왜구(토요일에 착하게 왜가리 구경하는 사람)’를 비롯한 인격 모독성 축약어가 난무하는 걸 나 원내대표는 아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발언 당일에 사과는 왜 한 걸까, 그것도 문자메시지로.
양정대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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