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스며든 사회적경제] <중>우리가 만드는 공유의 가치
[저작권 한국일보]사회적경제_신동준 기자/2019-06-25(한국일보)

“우리 아파트는 오래돼서 손볼 데가 많아요. 은퇴한 시니어들에게 간단한 집 수리를 맡기면 출장비도 아끼고 일석이조 아닌가요.”(서울 미아벽산라이브파크아파트)

“대단지 우리 아파트는 농촌 출신이 많아요. 고향에서 올라온 농작물을 직거래하는 직판장을 만들면 어떨까요.”(서울 SK북한산시티아파트)

우리 마을 문제는 내 손으로 해결한다. 서울 강북구 미아벽산라이브파크아파트 주민들이 직접 나섰다. 지어진 지 16년째인 아파트 내부 설비가 낡아 각종 불편이 잇따르면서다. 그래서 나온 게 ‘생활서비스 시니어사업단’이다. 은퇴한 주민 중 관련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단지 내 소소한 집 수리를 해주자는 아이디어다. 처음 이 제안을 한 최상준(58) 미아벽산라이브파크 마을공동체 회장은 “배관, 설비, 싱크대 등 문제는 관리사무소에서도 해결해주지 않아 개인이 기사를 불러야 하는데 출장비는 부르는 게 값”이라며 “생활서비스 수요가 느는데 누군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가 이번 사업을 제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은퇴자 입장에선 소일거리를 하면서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오는 9월 정식으로 시니어사업단이 발족하면 △주방ㆍ화장실 설비 리폼 △계량기 동파 복구 △노인을 위한 화장실 안전바 설치 △막힌 변기ㆍ배수구ㆍ싱크대 뚫기 △전등 교체 등 생활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주민들은 이 사업을 ‘이웃이랑 건너집이랑’이라고 이름 붙였다.

옆 동네 삼각산동 SK북한산시티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에 농산물 직거래 직판장을 열기로 했다. 산지 농민과 직거래해 저렴하고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자는 한 주민 제안에 따른 것이다. 47개동 3,830세대가 사는 대단지인 만큼 주민 호응도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공동주택 같이살림 프로젝트’ 시범사업 일환으로 안심 먹거리 사업이 진행된 서울 동대문구 래미안아름숲아파트에 사는 청소년들이 방과 후 간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래미안아름숲입주자대회의 제공
◇사회적경제로 더 살기 좋은 우리 마을

최근 서울에서는 아파트나 연립 등 공동주택에 사는 주민들이 생활문제를 직접 발굴해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해결하는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서울시의 ‘공동주택 같이살림 프로젝트’다. 시민 62%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에서 이들이 피부로 가장 많이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우리 삶 속에서 쉽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지난해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는 22개 아파트 단지에서 같이살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시에서는 단지마다 3년간 최대 2억원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주민 삶의 질뿐 아니라 지역사회 내 사회적경제 역량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작년 청소년에게 안심 먹거리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동대문구 래미안아름숲아파트에 사는 김종석 입주자대회의 회장은 “시범사업을 종료할 때 모두들 아쉬워해서 올해도 한번 더 해보기로 했다”며 “주민들이 발굴한 아이템으로 3년 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라고 말했다.

시간제 아이돌봄 서비스 ‘놀담’의 대학생 놀이 시터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다. ㈜잘노는 제공
◇소셜벤처하는 청년들 “돈 벌면서 세상에 이로운 일 할래요”

자기 앞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돈도 벌겠다는 청년들도 출현하고 있다. 사회적경제와 청년의 만남, 바로 소셜벤처다. 소셜벤처는 기술·경영 혁신 등 모험적 방법으로 기업을 경영하면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모델이다.

“저희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어요. 13살 차이나는 늦둥이 동생을 거의 제가 키우다시피 돌본 셈이죠. 제가 없었더라면 부모님이 동생을 정말 어렵게 키웠을 거예요.”

소셜벤처 ㈜잘노는의 문미성(25) 대표가 시간제 아이돌봄 서비스 ‘놀담’을 론칭할 수 있었던 이유다. 놀담은 대학생 놀이 시터와 돌봄을 원하는 학부모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문 대표는 “내게 가장 가까운 사회 문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경험에 가까운 지식을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가장 자신 있는 솔루션이 나온다는 생각을 했다”며 “돌봄 서비스를 너무나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놀담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재학 중 경영학회 '인액터스'에서 일찍이 사회적경제를 경험해본 것도 밑천이 됐다. 그는당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에 맞서 동네 빵집 9곳이 뭉친 소상공인 협동조합 ‘동네빵네’를 설립하는 과정에 손을 보탰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누군가를 돕는 활동을 하면서도 내가 돈을 벌면서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어요.” 2014년 휴학과 동시에 스타트업에 취직해 1년간 경험을 쌓았다. 2016년 8월에는 드디어 놀담 서비스를 시작했다.

“놀이로 돈 제일 많이 버는 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놀담이 여타 아이돌봄서비스와 차별되는 점 역시 '아동의 놀 권리'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있다. “쉽게 돈을 벌자면 대학생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영어나 학습 시터도 하고, 학습지나 교구도 끼워 팔면 돼요. 하지만 우리 목표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건데, 그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에요.” 방점은 돈보다 '놀이'에 찍혀있다.

대학가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벤처 냅스터의 김현성 대표는 서울 안암동 인근에서 고려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유주택 ‘코잠’을 운영 중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보니 주거에 대한 문제가 곧 제 문제였어요. 친구와 함께 이건 뭔가 불합리하다, 이럴 바에는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는 고려대 인근 아파트를 빌려 시세보다 싼 가격(보증금 100만원, 월세 30만원대)에 셰어하우스로 제공하고 있다.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장학생’ 제도를 운영하면서 이들에겐 10만원 더 저렴한 가격에 임대해준다. 냅스터는 2017년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됐다. 그 역시 이로운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다.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영리보단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소규모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저는 사회적경제를 좀더 수면 위로 올리고, 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회적대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강병호 서울시 노동민생정책관은 “서울의 사회적경제는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루었으나 시민체감도와 참여도는 아직 낮은 실정”이라며 “주민들이 생활에서 겪는 생활문제를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해결해보고, 나아가 주민들 스스로 사회적경제 기업을 설립해 지역주민을 고용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