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피셰르 지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8일까지 추모 공연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 주오/기다려도 기다려도 임 오지 않고/ 파도소리 물새소리에 눈물 흘렸네”
김민부 시인이 쓴 가사에 장일남 작곡가가 곡을 붙인 한국의 가곡 ‘기다리는 마음’이 24일 밤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 울려 퍼졌다. 종이에 적힌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른 건 외국인들이었다. 이날 3년 만에 내한 공연을 가진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 단원 63명은 지휘자 이반 피셰르(68)의 지휘를 따라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애달픈 마음을 노래 했다. 노래의 반주를 맡은 현악기의 선율이 유난히 구슬펐다.
‘기다리는 마음’은 지난달 29일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허블레아니(인어)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BFO 측에서 직접 선곡하고 연습해 온 곡이다. 사고가 발생한 후 피셰르와 BFO는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뜻을 한국에 전해왔고, 그 약속을 지켰다. 피셰르는 한국 음악가 친구들이 많아 더욱 가슴이 무너질 정도의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외국인 연주자들이 부르는 노래였지만 노랫말은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다. 이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한국 노래 가사를 연습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곡을 연주하기 전 피셰르는 “헝가리와 부다페스트 시민을 포함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저는 마음을 다해 가족을 잃은 분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싶다”며 “우리의 작은 위로라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다리는 마음’ 연주가 끝난 후에는 약 20초간 가만히 멈춰 애도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허블레아니 사고로 인한 한국인 사망자는 현재까지 23명이다. 아직 3명의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날 공연의 프로그램북 첫 페이지에는 야노시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의 추모의 글도 실렸다. “이 사고는 부다페스트 한가운데서 일어났지만, 한국 국민들에게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휘자 이반 피셰르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이번 서울에서의 공연을 희생자분들에게 헌정함으로써 헝가리를 대신해 깊은 조의를 전할 것입니다.” 롯데콘서트홀 측에 따르면 헝가리 대통령의 추모글을 싣자고 제안한 것도 BFO였다고 한다.
BFO는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선정한 세계 오케스트라 9위에 이름을 올린 세계적 오케스트라다. 1983년 당시 공산국가였던 헝가리에서 피셰르는 자유로운 악단을 만들겠다며 직접 BFO를 설립해 현재까지 이끌고 있다. BFO는 자폐아동과 가족들을 위한 ‘코코아 콘서트’ 등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사회계층에 음악을 선사한다. 2015년엔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시리아 난민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고, 2016년 내한 공연 때는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우리 민요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추모곡에 이어 연주된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4번, 교향곡 7번은 “올해 최고의 연주로 꼽을 만하다”(황장원 음악평론가)라는 호평을 자아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협연까지 더해져 이날 객석은 2,000명에 가까운 관객으로 빼곡했다. 피셰르와 BFO, 조성진은 25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했고, 26일(부산문화회관), 27일(대구콘서트하우스), 28일(대전예술의전당)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모든 공연에서 다뉴브강 사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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