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류굴ㆍ왕피천 계곡ㆍ금강소나무 군락지에 라벤더 농장까지 
울진 근남면 구산리 왕피천 계곡. 실직국 왕이 피신했다는 곳으로 지금도 찾아가기 쉽지 않은 오지 중 오지다. 울진=최흥수 기자

백두대간 끝자락 울진은 바다가 아니어도 갈 곳이 많다.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왕과 관련된 관광지도 여럿이다. 이른바 울진의 ‘임금님표’ 여름 피서지 세 곳을 소개한다.

 ◇여름엔 동굴…진흥왕이 다녀간 성류굴 

"경진년(560년) 6월 ○일,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 지난달 울진 성류굴에서 신라 진흥왕이 다녀갔다는 명문이 발견돼 이목을 끌었다. 글자가 발견된 곳은 제8광장의 석회암 기둥, 그러나 한자에 능통하다 해도 맨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암호 같은 몇 글자가 보일 뿐이다. 아무렴 어떤가. 동굴은 연중 15~17도의 기온을 유지하는 최고의 피서지다. 입구에서부터 서늘한 바람이 감지된다.

울진 근남면 성류굴. 유럽 고대 건축물을 닮아 ‘로마의 궁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진흥왕 일행이 다녀갔다는 글자가 새겨진 돌기둥. 맨눈으로는 알아보기 힘들다.

성류굴(聖留窟)은 성불이 머물던 곳이라는 의미다. 2억5,000만년 세월이 빚은 기묘한 종유석과 석순이 금강산을 보는 듯해 ‘지하금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약 330m의 주 굴과 여기서 뻗은 540m 가지 굴 중 270m를 개방하고 있다. 너무 짧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계단을 오르내리고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자면 시간이 꽤 걸린다. 제10광장에 이르기까지 한 굽이 지날 때마다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는 바위 기둥과 주름에 눈길을 주다 보면 30~40분이 훌쩍 지나간다. 성류굴이 일반에 개방된 건 자연 자원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1967년이다. 일부 종유석이 떨어져 나갔거나 관람객의 손길이 닿아 검게 변한 모습도 보인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굴을 나오면 바로 앞에 왕피천의 푸른 물이 살랑거린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이다.

 ◇여름엔 계곡…왕의 피란처 왕피천 계곡 트레킹 

왕피천은 영양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 드는 60.95km의 물길이다.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옛날 삼척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 실직국의 왕이 피란한 곳이라는 데서 비롯한 지명이다. 왕피천은 길이에 비해 산이 가파르고 골짜기가 깊다. 계곡 끝 마을인 ‘굴구지 산촌마을’ 표지판에 ‘왕피천 아홉 구비’라는 수식이 쓰여 있다. 자랑에는 으레 과장을 섞기 마련이지만 왕피천 아홉 구비는 한참 축소한 숫자다. 사실대로 쓰면 되돌아 나갈지도 모른다. 왕복 2차선 도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시멘트 포장 산길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이 깊은 산골에 마을이 있을까 싶을 때쯤 집이 한두 채씩 보인다. 차가 갈 수 있는 곳은 주차장이 마련된 구산3리 마을회관까지다.

왕피천계곡 용소 부근.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다.
적당히 차갑고 맑은 물에 잠긴 자갈이 투명하게 보인다.

이곳부터는 상천동 초소까지 약 2km를 걸으면 본격적인 계곡 트레킹이 시작된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 다시 도로가 나오는 속사마을까지 약 5km 구간 탐방로가 나 있지만 대개는 초소에서 30분 거리의 용소까지 갔다 되돌아온다. 이곳만 해도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만 그득하다. 적당히 차가운 계곡물은 한없이 푸르고 맑다. 수심이 깊은 용소 구간을 제외하면 계곡을 첨벙첨벙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물속에서 걷기 좋은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다.

 ◇여름엔 숲…왕실이 관리한 금강소나무 숲과 금강송 에코리움 

울진군은 2015년 서면의 명칭을 금강송면으로 바꿨다. 금강송면 소광리의 금강소나무 숲은 국내에서 가장 멋진 솔숲으로 평가된다.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과 생태관광자원 분야에서 ‘한국관광의 별’에도 선정됐다. 여의도 8배 면적에 수령 200년이 넘은 8만그루의 금강송이 울울창창 기운차게 하늘로 뻗어 있다.

금강송면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 생태 보존을 위해 하루 탐방객을 8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음달 4일 개관하는 산림휴양시설 금강송 에코리움의 숙소 내부. 벽을 전부 금강소나무로 마감했다.
금강송 에코리움의 3D영상. 솔 향기 짙은 전시실에서 편안히 누워 감상할 수 있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곳이 오지 중의 오지이기 때문이다. 숲은 울진에서 봉화로 넘어가는 36번 국도에서 포장과 비포장 길을 15km 더 들어가야 나온다. 일제가 백두대간 일대의 목재를 봉화 춘양으로 무지막지하게 실어내던 때도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금강소나무 숲은 1982년 산림청에서 산림유전자원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지만 국가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340여년 전인 조선 숙종6년(1680)부터다. 왕실의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일반인의 벌채를 금지하는 ‘황장봉계표석’을 설치한 게 그때다. 금강송은 다른 소나무에 비해 나이테가 촘촘하고 단단해 뒤틀림이 없고 쉽게 썩지 않는다. 궁궐 건축에 쓴 이유다.

금강송 군락지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른 후 숲으로 내려오는 길은 쉬엄쉬엄 2시간 정도 걸린다. 초입의 500년 소나무부터 웅혼한 기운을 풍긴다. 그러나 나라에서 관리하는 만큼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사단법인 ‘금강소나무숲길(uljintrail.or.kr)’ 홈페이지에서 탐방 구간별로 하루 80명만 신청을 받는다. 숲 해설가가 동반해 금강송과 생태에 대해 설명해 준다.

다음달 4일 개장 예정인 '금강송 에코리움’(소광리 303)을 이용해도 금강소나무 숲을 산책할 수 있다. 금강송 에코리움은 울진군이 운영하는 산림 치유 시설이다. 금강소나무로 내부를 마감한 숙소와 부대시설로 찜질방ㆍ스파를 갖춘 치유센터가 있고, 명상과 숲길 탐방 등의 숲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자세한 사항은 054-783-8904로 문의.

금강송면 전곡리 양원마을의 라벤더 농장.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정차하는 봉화 양원역 바로 맞은편이다.

금강송 군락지에서 봉화로 넘어 오는 길, 금강송면 양원마을(전곡리 303-2)에선 ‘양원 라벤더 축제’가 열리고 있다.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잠시 정차하는 양원역(봉화 소천면) 맞은편 오지 마을이다. 농장이 평지가 아니라 구릉이어서 협곡의 녹음과 보랏빛 라벤더가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미풍에 흩뿌려지는 라벤더 향이 산기슭에 가득 퍼진다. 축제 기간 라벤더 꽃 수확과 모종 옮기기 체험을 할 수 있다. 36번 국도에서 7km 거리지만 구불구불 산길을 10분 이상 넘어야 한다.

울진=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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