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가 미덕인 세상, 조금은 늦은 출발이 오히려 편안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10년 가까이 배웠던 바이올린 대신 무용으로 전공을 정했을 때나, 무용복을 벗고 플로리스트로 변신했을 때나 자신을 믿었기에 그 상황을 행복하게 받아들였다는 2012년 미스코리아 ‘선’ 김사라 씨를 만났다.
HI : 사라씨를 보면 누가 먼저 출발했느냐보다, 얼마나 더 오래 달리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김사라(이하 김) : 평소에는 뭐든지 빠르게 진행하는 편인데,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만큼은 오래 고민하고 느리게 결정하는 것 같아요. 사실 다섯 살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중 3때 무용을 시작했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이미 기본기가 다 갖춰져 있었는데, 저는 바이올린을 하던 습관 때문에 처음에는 평상시 자세를 바로잡는 것부터 힘들었어요. 그런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이어, 국립현대무용단까지 들어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또 미스코리아에 도전했을 때도 20대 초반들이 많았는데, 저는 스물다섯 살에 출전했거든요. 그런데 ‘선’까지 되고 미스어스까지 나가게 될 줄 상상도 못했죠. 그래서 무슨 일을 할 때에 ‘너무 늦지 않았을까’란 식의 고민은 하지 않아요.
HI : 자신에 대한 믿음이 돋보이네요.
김 : 학창시절의 전부를 바쳤던 무용도, 앞으로 전부를 바칠 꽃꽂이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아요. 늦게 시작한 만큼 더 많이 준비하고, 더 꾸준히 해나가면서 확실한 저만의 색깔을 담을 수가 있잖아요.
HI : 미스코리아 대회를 통해 무엇을 느꼈나요?
김 : 한마디로 ‘휴머니즘’이라 대답하고 싶어요. 한국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친구들과 전 세계 88개국 친구들 사이에서 느꼈던 점은 결국 우리는 똑같은 사람, 똑같은 여자라는 점이었어요.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 살고 있든지 결국 같은 꿈과 고민을 안고 있더라고요. 제게 ‘보다 인간적인’ 것을 위한 노력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중요한 건 눈앞의 대상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는 거라 생각해요.
HI : 무용수일 때도 플로리스트일 때도 결국 손끝으로 꽃을 피워냈네요. 꽃에 빠져든 계기가 따로 있었나요.
김 : 스무 살 되기 전까지 대구에 살았는데, 성인이 되자마자 시작된 서울 생활에 긴장감과 부담감이 있었나 봐요. 또 평범한 인문 계열에서 예술대학을 갔기 때문에 경쟁 구도도 힘든데다, 무용수로서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시간까지 겹쳐서 제 성격에 걸맞는 저만의 쉼표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취미로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했죠. 꽃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자연으로 되돌아간 것 같아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또 숱한 자기계발서보다 지그시 꽃을 바라볼 때에 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거든요. 꽃은 완벽하지 않아도 그 존재와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존중받기 때문에 계속해서 마음이 끌렸던 것 같아요.
HI : 그럼 이제 막 서울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김 : 지방에 있을 땐 몰랐는데, 서울 오니까 작은 것 하나 하나가 경쟁 구도와 비교선상에 오르더라고요. 뭔가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이나 사회생활에 대한 압박감이 드는 게 싫었어요. 평소 남 눈치를 잘 안보는 원래의 성격을 잊지 않고 “신경 쓰지마. 너는 너야”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HI : 서울과 파리, 런던에서 다양한 플라워 수업을 받으셨죠.
김 : 먼저 서울의 듀 셀 브리앙(Du Sel Brilliant)에서는 꽃에 관한 모든 기본을 탄탄하고 담백하게 배운 것 같아요. 또 파리의 야닉 스즈네브(Yannick Suzjev)는 감각적인 라인을 잘 쓰는데, 유니크하고 거칠고 시원시원한 느낌이랄까요. 개인적으로 제 성격과 가장 잘 맞았어요. 또 꽃보다 소재를 더 잘 써야하고, 소재보다 가지를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을 잘 알려준 곳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런던의 카트린 뮐러(Catherine Muller)는 18세기 로코코 스타일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플로리스트에요.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한국인의 감수성을 취향 저격한다고 해야 할까요. 마리 앙투와네트 시대의 디자인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생산하고, 다양한 꽃의 표정들을 혼합과 대조 기법을 통해 최대치로 이끌어내는 점이 멋있었어요. 이 세 곳에서 배운 특징들을 잘 소화해 저도 저만의 기술을 더 확고히 다지려고요.
HI : 각각의 기술로 느낌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니, 꽃도 하나의 언어라는 생각이 드네요.
김 : 물론이죠. 한방병원 암센터에서 4년째 수업중인데요. 암센터에서 힐링요가 수업을 진행하는데, 환자분들과 꾸준히 ‘플라워 테라피’로 소통하고 있어요. 그 속에서 소소한 변화를 바라볼 때마다 뭉클해져요. 뭔가 에너지를 나누어드린 것 같지만, 실은 제가 받아가는 게 더 많거든요. 투병하시는 분들은 죽음이란 단어에 예민하세요. 그런데 꽃도 생명체이다보니, 시들어가는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하지만 꽃은 드라이플라워로 남기도 하고, 사람은 추억으로 기억되잖아요. 꽃을 통해서 시드는 과정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주시기도 해요.
HI : 문화센터 수업은 또 다른 느낌이겠어요.
김 : 여러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취미반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제자들은 시간대에 따라 다른데 낮은 주부, 저녁엔 직장인이 대부분이에요. 주부들은 육아나 살림운영에 모든 걸 바치고 있어서 경력 단절에 대한 고민과 자기 표현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그런데 꽃을 만지며 리즈 시절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풀린다고들 하세요. 또 직장인들은 교실 문을 열자마자 안색에서 피로감이 확 느껴지는데, 집으로 되돌아갈 때엔 다들 맑게 갠 얼굴이에요. 요즘은 20대에 취직해서 60대에 은퇴하는 공식이 깨진지 오래라, 다들 인생 삼모작 사모작에 고민이 많아요. 그리고 인생에서 취미생 활은 빠뜨릴 수 없는 요소잖아요. 꽃꽂이 취미수업은 암 환자분들에겐 희망을,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을, 주부들에겐 건강한 정신건강 유지를, 직장인들에겐 직무능력 향상을, 어르신들에겐 치매예방에 도움을 드리는 힘이 있어요.
HI : 이렇게나 열심이신데, 수입은 어떤 편인가요.
김 : 우리나라에서 꽃의 소비는 입학식이나 졸업식, 결혼식 등 경조사용이 약 70%를 차지해요. 그래서 화훼 분야 종사자들이 ‘김영란법’ 시행으로 큰 타격을 입었죠. 하지만 최근에는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꽃을 사는 소비자가 늘고 있고, 화훼나 원예와 관련된 가능성을 보고 꽃과 관련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도 많아졌어요. 솔직히 수입은 프리랜서다보니 매번 달라요. 아무래도 계절을 타는 것도 있고요. 고정적으로는 웬만한 직장인들 월급만큼은 벌고, 가끔씩 더 버는 날도 있어요.
HI : 사라씨가 얼마나 더 활짝 피어날지 기대되네요.
김 : 활짝 핀 후, 제가 맺고 싶은 열매는 바로 ‘글로벌 힐링센터’인데요. 꽃과 음악, 요가와 상담을 통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곳을 꿈꾸고 있어요. 그래서 심리상담 분야를 새롭게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 설레게 하는 것이 단 하나만이라도 있다면, 누구나 날마다 봄날이지 않을까요. (웃음)
김수현(2006년 ‘미’ 미스한국일보) 녹원회 이사 crescent0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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