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 뒷걸음이나 게 옆걸음이나”라는 말이 있다. 가재가 뒤로 가는 것이나 게가 옆으로 가는 것이나 앞으로 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로 두 가지에 큰 차이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뒤로 걷는 걸음은 ‘가재걸음’, 옆으로 걷는 걸음은 ‘게걸음’이라는 말을 쓴다. 특히 가재걸음은 일이 매우 더디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걸음걸이를 나타내는 말에는 동물의 걷는 모양에서 따온 것들이 꽤 있다. 가는 듯 마는 듯 아주 느리게 걷는 것은 ‘달팽이걸음’,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걷는 것은 ‘고양이 걸음’이라 한다. 긴 다리로 보폭을 크게 하여 걷는 모습에는 ‘노루걸음’, ‘두루미걸음’, ‘황새걸음’이란 말을 쓸 수 있다. 이 세 가지의 뜻풀이에는 ‘겅중겅중’, ‘겅둥겅둥’, ‘성큼성큼’과 같이 동물들이 걷는 모양새에 따라 각기 다른 의태어가 쓰여 나름의 섬세한 차이를 느끼는 재미가 있다. 상대적으로 다리가 짧아 걷는 속도가 느리거나 보폭이 작은 걸음에는 두 발을 모아 뛰며 종종거리며 걷는 ‘까치걸음’, 어기적거리며 걷는 ‘거위걸음’,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걸음’이란 말을 쓸 수 있다.
동물의 걸음걸이와는 관계없지만 ‘공걸음’이란 말도 있다. “멀리까지 오셨는데 공걸음만 하고 가셔서 안타깝습니다.”와 같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헛수고만 하고 갈 때 쓴다.
2019년도 이제 절반이 지나갔다. 연초에 계획했던 것들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황새걸음으로 성큼성큼 나아가지는 못했어도 작은 보폭으로나마 종종거리며 까치걸음은 걸었던 상반기였으면 좋겠다. 적어도 ‘가재걸음만 아니었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반기를 맞이해봐야겠다.
이유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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